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경을 깨달을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여심(루카24,35-48)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20 조회수1,102 추천수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419/주일복음말씀묵상/성경을 깨달을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여심(루카24,35-48)

 

 

* 전문은 cafe.daum.net/yoondaniel ‘어느 가톨릭 평신도의 하느님 말씀 묵상

  주일복음말씀묵상편을 참고하시길!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은 베드로의 현현 체험에 이제 또한 자기들의 체험도 덧붙인다.

35절에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고 말한다.

그 체험은 루카의 눈에는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 시대의 교회에게 그리고 모든 시대의 교회들에게 부활하신 분을 만나고 그를 알아 볼수 있는 이 은총의 가능성에 관해서 중요한 것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32절에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그리고 35절에서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것을 말하고”, 45절에서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라고 말한다.

이 말씀들은 너무나 중요하다!

 

말씀과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우리 마음을 열어 뜨겁게 하시고, 그분을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것은 성령이시다!

곧 성경에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완전한 기록과 계시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활짝 열려지지 않았으므로, 그분은 그들에게 거룩한 말씀을 열어주시기 위하여 그들에게 나오셨다.

주님께서는 두 제자와 동행하셨고(15), 그들과 함께 유하셨지만(20), 그들이 떡을 드려 그것을 떼시기까지 그들의 눈은 열리지 않았고 그분을 알아보지도 못하였다!

 

에페1,17-18절에 우리 주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느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라고 말한다.

여기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지혜와 계시의 영을 가지고 부활의 능력을 볼 수 있도록 기도하였다. 이것은 다만 그분이 무덤에서 일어 나셨다는 것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분 속에 부활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이다.

눈이 열리는 것, 계시란 앞으로 하느님이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것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많은 성도들이 지금 현재 또는 미래의 어느 날에 그들의 생활 속에서 겪는 생의 미약함이나 실패에서 구원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 주시기만하면,

그들은 이런 나약함이나 실패가 십자가 위에서 이미 모두 처리되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죄 사함, 구속, 성령을 주심이 이미 다 완성된 사실임을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며, 계시 외에는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실제로 적용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여전히 그런 나약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곧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여전히 무력한가?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그런 능력을 가지셨지만, 왜 우리는 계속해서 능력을 가지지 못하는가?

우리가 알지 못함이 그 이유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계시이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면 모든 일이 잘되어 나갈 것이다.

계시는 단순히 교리나 성경적 지식이 있다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분을 알게 되는, 곧 엠마오의 두 제자처럼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실 어느 날에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자신이 변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는 가르침이나 지식의 전달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우리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다!

그분이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실 때, 우리는 즉시 ! 하느님, 이 일이 이루어짐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할 것이다.

지혜는 우리로 이해하게 하고, 계시는 알게 한다!

지혜는 어떤 사실을 분명하게 하고, 계시는 그 사실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다.

 

31절에 저희 눈이 밝아져 그 인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고 말한다. 루카는 예수님이 그들을 떠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라지는 것과 떠나가는 것은 다르다. 여기서 사라지는 것, 곧 보이지 않는 것은 숨는 것의 한 방법이다.

그분은 영이신 그리스도(pneumatic Christ), 곧 성령이 되셨다. 그리고 무소부재하시다!

 

<36-43절에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있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예수의 죽음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모여서 공포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한 예수님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들려 올려진 후 제자들에게 돌아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요한14,3, 18-19).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신다!

인간의 실존은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불안과 공포를 가져다주는 사탄의 세력을 꺾었기에 우리에게 평화를 주실 수 있는 것이다.

평화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는 구원을 가리킨다.

 

죽은 자의 출현을 그 죽은 자의 영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하는 유령신앙의 영역이나 환각으로 치부하는 당시 그리스의 사상과 문화와는 반대로, 루카는 육체성으로 증명되는 부활하신 분의 실재성, 곧 손과 발을 가지고 계시고, 생선을 잡수시는 그분의 현현을 강조한다.

또한 부활하신 분의 현현이 실제적인 사건으로 증명됨으로써 이미 예전에 루카복음의 기본적인 특징이었던 기쁨이 새롭게 그리고 더욱 깊이 있게 나타난다. 예수의 오심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가져오며, 모든 두려움과 슬픔을 이기는 기쁨을 일으킨다(요한20,19-20).

 

<44-48절에서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은 예수 당시의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세 부분이다. 곧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구약의 여러 곳에서부터 그가 메시야이며 고난을 받아야 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보여주었다(46).

이미 천사들이 무덤에서 그랬던 것처럼(6-7), 이제 부활하신 분 자신도 마무리로 다시 한 번 그가 전에 자기 자신과 자기의 길에 관하여 말했던 것(9,22,44)을 지적하신다. 그것은 메시야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걸어야만 하는 길에 대하여,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것과 일치하며 또한 그것을 성취시키신다.

 

또한 성경이 말하는 구원 사건은 이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선포함으로써 비로소 종결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항상 선교 명령을 동반하는 것이 신역성경의 공통점이다.

예루살렘이 항상 분명하게 구원의 약속의 첫 번째이자 본래적인 수신지로서, 그리고 그 외의 세상을 향한 구원의 시발점으로서 전제되었듯이, 루카에 있어서 부활하신 분의 지시도 예루살렘에서 시작하라고 말한다(사도1,8; 로마15,19).

바로 제자들의 눈앞에서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로 이어지는 성경이 이루어졌다!

목격자들로서 그들은 이제 예수 안에 나타난 구원에 대하여 온 세상에 증언해야 하며, 그들의 말씀 전파를 통하여 그 구원을 모든 민족들에게 접근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48).

 

그리고 49절에서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의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약속하신 바 성령을 가리키는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을 받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알렐루야! 아멘.

하느님의 은총이 충만한 한 주가 되시길!

http://cafe.daum.net/yoondaniel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