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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5년 4월 21일 부활 제3주간 화요일 주님께 사랑의 노래를 불러 드려라
작성자신승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20 조회수1,15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5년 4월 21일 부활 제3주간 화요일 영적독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강론에서
 
(Sermo 34,1-3. 5-6: CCL 41,424-426)
 

주님께 사랑의 노래를 불러 드려라

 

“주님께 노래하라, 새로운 노래, 성도들의 모임에 그 찬송 울리어라.” 주님께 새로운 노래를 불러 드리라고 권고합니다. 새사람은 새로운 노래를 알고 있습니다. 노래는 기쁨의 일이며 좀 깊이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사랑의 일입니다. 새 생활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새로운 노래를 할 줄 압니다. 새로운 노래는 생활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노래, 새로운 계약, 이 세 가지 모두 유일하고 같은 하느님 나라에 속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은 새로운 노래를 부를 것이며 또 새로운 계약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이 사랑할 때 무엇을 사랑하는지 그것이 바로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사람이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랑할 때 사랑의 대상을 잘 선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선택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사랑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요한의 말을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합니다.” 과연 어떻게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하고 여러분이 물어 본다면 하느님께서 먼저 인간을 사랑하셨다는 것 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사랑의 대상으로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결국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원천을 주신 것입니다. 그 사랑의 원천을 바오로 사도는 좀더 명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어디서 옵니까? 우리 자신에게서 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어디서 옵니까? 우리에게 부어 주신 성령을 통해서 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이 사랑의 힘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합시다. 성 요한은 더 명확히 표현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이는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옵니다.”라는 말뿐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중 누가 감히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은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 한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랑의 대상으로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주시며 우리에게 이렇게 외치십니다. “나를 사랑하라. 그러면 나를 소유하리라. 너희가 나를 소유하지 않는다면 나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고 위로부터 태어난 나의 형제들, 나의 아들들, 가톨릭 교회의 자녀들, 그리고 하늘 나라의 거룩한 씨앗들인 여러분, 내 말을 들으십시오. “주님께 노래하라. 새로운 노래를 불러 드려라.” “그러나 나는 노래하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여러분은 대답할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노래합니다. 물론 노래하지요. 나는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생활이 여러분의 입과 다른 음률로 노래하지 않는지 생각하십시오.

목소리로 노래하십시오. 마음으로 노래하십시오. 입술로 노래하십시오. 여러분의 거룩한 생활로 노래하십시오. “주님께 노래하라. 새로운 노래를 불러 드려라.” 여러분은 사랑하는 그분에 대하여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있습니까? 물론 사랑하는 분에 대해 노래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분께 노래할 때 무슨 찬미를 드려야 하는지 물어 본다면 그 찬미의 내용을 벌써 들었습니다. “주님께 노래하라. 새로운 노래를 불러 드려라.” 여러분은 찬미할 내용을 찾고 있습니까? “성도들의 모임에 그 찬송 울리어라.” 노래하는 사람 자신이 바로 찬미가의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찬미를 전하고 싶어합니까? 노래하는 바를 자신의 생활로 실천하십시오. 선한 생활을 하면, 여러분이 바로 그분께 대한 찬미가 되는 것입니다.

2015년 4월 21일 부활 제3주간 화요일
독서기도 제2독서 발췌(대성무일도 제2권 675-677)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축일 08월 28일)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또는 아우구스티노)는 이교도인 로마 관리인 부친 파트리키우스(Patricius)와 그리스도인인 모친 성녀 모니카(Monica, 8월 27일)의 아들로 354년 11월 13일 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 지방의 타가스테(Tagaste, 현 알제리 북쪽의 수크아라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타가스테와 인근 마다우라에서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았는데, 370년에는 법률가가 될 꿈을 안고서 수사학을 연구하기 위하여 카르타고(Carthago)의 대학교에 들어갔다. 이 때 그의 나이는 17세였는데, 여기서 한 여인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하여 그의 부친이 항상 소중히 여기던 아들 아데오다투스(Adeodatus)를 낳았다.

그는 공부를 마치고 여러 지방에서 교사생활을 하며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생활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는 점차적으로 철학에 흥미를 갖다가 존재 문제 특히 악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373년경 마니교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타가스테와 카르타고 등지에서 10여 년간 교사생활을 한 후 383년에 로마(Roma)로 가서 수사학교를 세웠으나, 학생들의 태도 때문에 크게 실망하다가 384년 가을부터 밀라노(Milano)의 수사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때 그는 신플라톤 철학과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 주교의 설교에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암브로시우스의 강의를 통해 성서를 문자적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은유적 또는 영적으로 해설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는 한편으로는 명예, 재산, 결혼 등의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며 살려는 소망이 불길처럼 치솟았다.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정원을 산보하다가 “집어서 읽어라”(Tolle, lege) 하고 반복해서 외치는 신비로운 소리를 듣고 성서를 들어 펼쳐 읽어 본 것이 사도 바오로(Paulus)의 로마서 13장 13절의 말씀이었다.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그래서 그는 386년 8월 교수직을 그만두고 그의 친구 성 알리피우스(Alypius, 8월 15일)와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함께 387년 4월 13일 부활성야에 밀라노에서 성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지도로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았다. 그 후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와 일종의 수도원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다가, 391년에 자신의 소망과는 달리 사제로 서품되었고, 5년 후에는 히포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북 아프리카의 교구에서 그리스도교 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한 주교 중의 한 사람으로 거의 35년을 봉사하였다. 그는 사목자의 권위를 행사하되 백성들의 복리와 행복을 위하여 사용하였고, 대성당의 성직자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으며, 엄격한 규율 아래에서 범사를 행했으며, 주일과 축일에는 꼭 강론을 하였고, 예비자 교리를 담당하였으며, 교회와 가난한 사람들의 재정지원을 물색하는 등 사회정의를 위하여 주교직을 유용하게 활용했다. 그는 틈나는 대로 글을 썼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교구 신자들과 도나투스파(Donatism) 이단자들에게도 반박문을 써 보냈다. 특히 마니교(Manichaeism)와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를 반박하는 강연회에는 청중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외에도 삼위일체와 은총론에 관해서도 책을 썼는데, 그의 연구 대상은 매우 광범위하였다. 전해오는 저작으로는 113종의 책과 논문, 200여 통의 편지, 500회의 설교 등이 있다.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는 자신의 개종 과정을 기록한 자서적적 저서인 "고백록"(Confessiones)과 호교론적 저서인 "신국론"(De ciavitate Dei)이 있다. 그는 흔히 '은총론의 박사'(Doctor Gratiae)라고 불린다. 그는 교회의 가장 위대한 교부이자 교회학자이며 영성가였다. 그는 서방 그리스도 교회 지성의 모델로서 가톨릭 신앙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는 반달족이 히포를 포위 공격하던 430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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