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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5년 4월 22일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재생의 세례
작성자신승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21 조회수78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5년 4월 22일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영적독서

 

성 유스띠노 순교자의 그리스도인을 변호하는「제1호교론」에서
 
(Cap. 61: PG 6,419-422) 
 

재생의 세례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사람이 된 후 어떻게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게 되었는지를 서술하겠습니다.
우리가 가르치고 설명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모두 진리라고 믿으며 또 그 가르침에 따라 살기로 약속하는 이들 보고 우리는 하느님께 기도하고 단식하면서 지난날의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그들과 함께 기도하고 단식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그들을 물이 있는 곳에 데리고 갑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다시 태어났을 때 거행했던 것과 같은 예식으로 그들도 다시 태어납니다. 그때에 그들은 만물의 아버지이시고 주님이신 하느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스도는 "누구든지 새로 태어나지 않는다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일단 태어난 이들은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의 태중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모든 이에게 명백합니다.

예언자 이사야도 통회하는 죄인들이 어떻게 죄에서 벗어나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너희는 몸을 씻어 정결케 하여라. 내 앞에서 악한 행실을 버려라. 깨끗이 악에서 손을 떼어라. 착한 길을 익히고 바른 삶을 찾아라. 억눌린 자를 풀어 주고, 고아의 인권을 찾아 주며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주께서 말씀하신다. 오라, 와서 나와 시비를 가리자.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어지며,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그러나 너희가 기어이 거역하면 칼에 맞아 죽으리라. 이는 주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사도들로부터 받은 교훈입니다. 우리가 처음 태어날 때 우리의 이해나 동의가 없이 부모들이 결합하였을 때의 축축한 씨앗에서 태어나 악한 습성과 나쁜 행습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강요나 무지의 자녀로 머물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택과 지혜의 자녀가 되고 물 안에서 과거에 범한 죄의 사함을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뉘우치고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는 사람들 위에 만물의 아버지이시고 우리 주님이신 하느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리고 그들을 성세대로 인도하여 세례를 줄 때 그분의 이름만을 부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 하느님께 이름이 있다고 감히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불치의 정신 이상에 걸려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 세례는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마음이 밝아 오기 때문에 "조명" 이라고 합니다. 이 조명을 받는 사람은 또 씻음을 받는 것입니다.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예언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에 관한 모든 것을 예언하신 성령의 이름으로 조명을 받고 씻음을 받습니다.

2015년 4월 22일 부활 제3주간 수요일
독서기도 제2독서 발췌(대성무일도 제2권 P 683-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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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스티노 순교자 (축일 06월 01일)

 

성 유스티누스(Justinus, 또는 유스티노)는 100-110년 사이에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사마리아 지방에 세워진 플라비아 네아폴리스(Flavia Neapolis)의 이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성장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자세로 꾸준히 탐구하는 학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스토아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피타고라스 철학 그리고 플라톤 철학에 연이어 몰두하였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에사레아(Caesarea)의 바닷가를 산책하던 중에 한 노인을 만나 인간의 모든 사상, 플라톤 사상에도 한계와 부족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다. 그가 그리스도교에 심취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태도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성 유스티누스가 에페수스(Ephesus)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것은 130년경이다. 그는 이후 구도자로서가 아니라 진리의 설파자, 신앙의 설교가로 길을 바꾸어 한평생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그는 평신도였으나 스승이며 복음의 사도가 된 것이다.

그는 132-135년 사이에 에페수스에서 유대인 트리폰과 종교에 관한 토론을 가졌으며, 이것을 토대로 155년에 “트리폰과의 대화”(Dialogue with Trypho the Jew)를 저술하였다. 그는 순회교사로서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가르치다가 안토니우스 피우스(Antonius Pius) 황제가 있는 로마(Roma)에 도착해서 그곳에 머물며 자기 집에서 교리를 가르치는 학교(schola)를 세웠다.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항의하는 2편의 “호교론”(Prima Apologia, Secunda Apologia)을 썼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호교론자이며 또 그리스도교에 대한 장문의 글을 남긴 최초의 평신도이다. 그는 크레센스라는 견유학파 사람과 논쟁을 벌이다가 그의 사주로 인하여 로마(Rome)의 집정관인 유니우스 루스티쿠스(Junius Rusticus)에게 고발되어 다른 6명의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이방 신전에 희생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수많은 고문을 당한 후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2세기 호교론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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