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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25 토/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낮추어 선이신 하느님을 선포하라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24 조회수1,054 추천수6 반대(0) 신고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마르 16,15-20(15.4.25)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여라.”(마르 16,17)



The Commissioning of the Eleven

 

 

               

 낮추어 선이신 하느님을 선포하라  

 

튀고 싶고 잘 보이고 싶고 남보다 잘 살고 싶은 인간성이 더 자주 드러나는 요즘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보다는 다른 이들에게 비치는 이미지를 훨씬 더 중요시하는 세태이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생활이든 대인관계든 실재보다는 이미지가 크게 좌우하고 그래서 성형수술이 각광을 받는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어떻게 복음을 선포해야 할까?

오늘 제1독서는 장로들과 신자들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1베드5,5)라고 권고한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역사 과정 안에 숨어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 아래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5,6). 곧 현재의 어려운 처지를 단련을 위한 시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은 일이기에 모든 근심걱정을 마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듯 쉽게 처리하실 수 있는 하느님께 내맡겨야 한다(5,7). 또한 하느님께서 활동하실 때 악의 세력과 경향도 꿈틀거리므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1베드 5,8). 이렇듯 겸손과 내맡김의 자세로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면, 우리를 불러 주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온전하고 굳세게 해주시며 굳건히 세워 주실 것이다(5,10).

복음사가 마르코는 삼촌인 바르나바, 바울로, 베드로와 같은 자기보다 더 나은 이들을 섬기며 늘 겸손하게 복음전파에 동참하였다. 겸손이란 그렇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자신을 던지는 것이며 낮추는 것이다. 그렇다! 복음이 선포되는 출발점과 그 한복판은 하느님의 능력 아래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다. 복음선포란 자신을 낮춤으로써 하느님의 존재와 능력을 드러내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드러나고, 그런 주님을 모두가 만나 사랑하고 일치하며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곧 구원이요 영원한 행복이다. 우리 모두 예외 없이 마음은 높은 곳을 향하되 사랑의 몸짓은 점점 더 낮은 곳을 향해야겠다. 이런 삶의 모습이야말로 확실한 복음선포의 증거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제자들의 불신앙과 완고함을 꾸짖으시면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신다(16,15). 그분께서는 믿는 이들은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리라.”(16,17)고 말씀하신다. 주님께 대한 믿음 위에서 열린 마음으로 하는 복음선포는 ‘하느님의 선(善)’이 드러나고 선이신 하느님을 품고 발설하는 새로운 언어, 곧 긍정의 언어, 창조의 언어, 사랑의 언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선을 갈망하면서도 좋지 않은 생각, 싫어하는 사람의 실패와 잘못에 고소해 하며, 선보다는 악에 기울어 어둠속을 헤매기도 한다. ‘세상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느님이 아닌데 어쩔 수 없지!’ 하며 세속적이고 육적인 삶을 합리화하거나 묵인하는 경우도 많다. 또 다른 이들에 대한 험담, 경솔한 판단, 중상모략, 포기와 체념이 섞인 언어, 이분법적 사고에서 나오는 흑백논리의 주장, 절망 섞인 말 등 부정의 언어를 쏟아내곤 한다. 복음선포란 긍정의 새로운 언어, 모두를 살리는 생명의 언어, 절망 가운데서도 새롭게 시작하는 창조의 언어를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다. 이제 자신을 낮추어 겸허하게 인내하고 사랑으로 품어 긍정의 언어를 쏟아내는 복음선포를 시작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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