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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27 조회수982 추천수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4월 27일 부활 제4주간 월요일
 
I am the gate.
Whoever enters through me will be saved,
and will come in and go out and find pasture.
(Jn.10,9)
 
 
제1독서 사도 11,1-18
복음 요한 10,1-10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 산 등반에 최초로 도전했던 탐험가 조지 말로리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왜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십니까?”라는 질문을 받고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곳에 산이 있기 때문에 오릅니다.”

그는 과학적인 장비나 기술적인 도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요. 대신 단지 성취하겠다는 굳은 의지와 용기, 미지의 저 세계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참을성 없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를 가지고 에베레스트 등반을 했던 것이고요. 저 역시 신학생 때 우연히 조지 말로리의 이 말이 얼마나 멋지게 들렸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산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산악반에 들어가 열심히 등산을 했었지요.

솔직히 힘든 산을 오르게 되면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이런 말이 절로 나옵니다.

“이제 끝이야. 두 번 다시 산에 오르나 봐라.”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정상에 서는 순간, 이 말은 쏙 들어가게 됩니다. 물론 하산할 때 다시 같은 괴로움이 약간 들지만, 정상에서의 기쁨을 떠올리면서 웃으면서 내려올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번에 다시 산을 향하게 됩니다.

예전에 친구들과 함께 산에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전날 저녁 미리 산 밑의 민박집에 도착해서 쉬었다가 아침 일찍 등산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한두 잔만 하려던 계획이 틀어져서 너무 술을 많이 마신 것입니다. 아침이 되어 산에 오르려고 하는데, 몇몇은 도저히 오르지 못하겠다면서 중간쯤 가다가 포기하고 왔던 길로 내려갔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숙취로 인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힘들게 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정상에서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올라가면서 땀을 많이 쏟아서 술기운도 완전히 없어진 것은 물론이고요.

하산해서 중간에서 포기한 친구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 친구들은 여전히 술기운에 힘들어합니다. 또한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 않아서 넘어져 상처까지 생겼다며 불평합니다. 안 좋은 것투성입니다. 그러나 정상을 다녀온 사람은 모든 점이 다 만족스럽습니다.

주님을 느끼고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어떤 상황이든 감사하며, 만족스러워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것들에 더 중점을 두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만족스러운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뒤에 그들은 완전히 바뀔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라는 정상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똑바른 길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주님께서는 그래서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양 우리의 문으로 들어와야 함을 분명하게 말씀하시지요.

주님이라는 정상에 이르기 위해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행복이 그리 멀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것들은 조금씩 찾아온다. 작은 구멍에서도 햇빛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산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조약돌에 걸려 넘어진다. 작은 것들이 곧 중요한 것이다(코난도일).


1990년 신학생 때, 다른 신학생들과 함께 오른 소백산 겨울등반.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엘러 휠러 윌콕스)

오늘날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요.
부자와 빈자는 아니에요.
한 사람의 재산을 평가하려면 그의 양심과 건강 상태를 먼저 알아야 하니까요.
겸손한 사람과 거만한 사람도 아니에요.
짧은 인생에서 잘난 척하며 사는 이는 사람으로 칠 수 없잖아요.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도 아니지요.
유수 같은 세월, 누구나 웃을 때도 눈물 흘릴 때도 있으니까요.
아니죠.
내가 말하는 이 세상 사람의 두 부류란 짐을 들어주는 자와 비스듬히 기대는 자랍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가는 이의 짐을 들어주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남에게 당신 몫의 짐을 지우고 걱정 근심 끼치는 기대는 사람인가요?

짐을 들어주는 자와 비스듬히 기대는 자.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연히 짐을 들어주는 자가 되어야 함을 알면서도, 어느 순간 비스듬히 기대는데 익순한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네요.


따뜻한 봄을 알리는 개나리처럼, 따뜻함을 전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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