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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볼 수 있어야 믿을 수 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30 조회수855 추천수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복음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입니다.
          그러니까 달리 표현하면 
          언성을 높이셨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오늘 왜 언성을 높이셨을까요?
             
          아마 사람들이 당신을 좀체 믿지 않기 때문일 것이고
          제발 좀 믿어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이나 
          “나를 믿는 사람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저를 믿을 분이 얼마나 될까요?
          저와 같이 살고 있는 형제들 중에 
          저를 믿는 형제는 얼마나 될까요?
          아마 거의 없을 것이고 
          가까이 살수록 믿는 사람은 더 없을 겁니다.
             
          왜? 믿을 수 없는 숱한 저의 
          약함과 거짓과 허위를 봤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못 믿을 사람은 저뿐이 아닐 것입니다.
          저만 특히 약하고, 거짓되고, 
          허위에 가득한 게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다 도둑놈 같고 
          그래서 믿을 놈 하나 없다고 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믿을 놈 하나도 없습니다.
          더욱이 하느님처럼 믿을만한 사람을 찾는다면 
          믿을 사람 하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를 믿는다면
          그 사람 개인만 놓고 보면 믿을 수 없고
          그 사람을 보내신 하느님을 봐야 믿을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 사람이 단독자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보내셨기에 나와 함께 있고,
          그래서 그와 나 모두 하느님 안에, 
          하느님과 같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 있는 그를 보고, 
          그 안에 있는 하느님을 볼 때
          믿게 됩니다. 달리 말하면 보고 믿는 것인데
          이 말은 보고 나서야 믿는다기보다는 
          보기에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을 보내신 분을 믿는 거라고 말씀하신 다음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사람 너머 하느님을 볼 수 있어야 그 사람을 믿을 수 있고,
          인성 너머 신성을 볼 수 있어야 
          주님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주님을 보고서 보내신 분을 보고,
          보내신 분을 믿기에 우리에게 오신 주님을 믿는다면
          이제 주님을 보내신 분의 뜻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 구원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어둠 속에 머물지 않음이요 
          빛 속에 머묾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어둠이란 무엇이고, 
          어둠 속에 머물지 않음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종종 세상 돌아가는 것에 깜깜하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때의 깜깜함, 어둠은 모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것은 조금 몰라도 됩니다.
          그것을 모른다고 비 구원 상태인 것은 아닙니다.
             
          나는 왜 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세상에는 악과 고통이 있으며, 불행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모르는 것이 진짜 비구원입니다.
             
          이를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무명無明의 상태에 있는 것인데
          무명을 깨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 구원이며
          동녘에 어둠을 깨고 빛이 솟아오르듯
          어둠 속 무명 상태의 우리에게 
          빛으로 오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오늘 우리, 이것을 믿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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