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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5.2 토/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끼어듦과 맞아들임을 통한 삶의 성사화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01 조회수1,096 추천수3 반대(0) 신고
 

    부활 4주 토 요한 14,7-14(15.5.2)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4,7)


"If you know me, then you will also know my Father."
 
 


  끼어듦과 맞아들임을 통한 삶의 성사화  

 

오늘 복음은 고별담화의 일부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일치된 자신을 계시하시고(14,4-11), 제자들과의 관계(14,12-14)를 밝히시면서, 지상을 떠나기 전에 제자들을 확고한 믿음으로 무장시키려 하신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14,7)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유일한 길’이심을 더욱 강조하고, 그분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강화시켜준다. ‘안다’란 표현은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하나가 됨을 뜻한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14,7ㄴ)라고 말씀하신다. ‘알게 될 것이다’(7ㄱ절)는 미래 형태로서 일종의 약속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그 약속이 ‘이제 이미’ 예수님 자신 안에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따라서 아버지께로 가려면 지상에 현존하는 예수님을 보고서 믿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일치하여 계시므로 그분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그분이 하시는 일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다(14,10). 그분은 당신이 아버지 안에 있으니 믿으라고 권고하시면서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14,11) 하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이 일들’은 아버지와 예수가 함께 일치하여 행하는 것들로서, 예수님을 증언하는 표징들을 가리킨다. 이 일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표징이요 증언이므로 예수님을 믿도록 이끌어주고 도와주는 근거가 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14,12) 이렇듯 믿는 제자들이 행하는 ‘일들’은 예수님 자신의 일이다. 곧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은 내 안의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떠나간 다음에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또한 그 일들은 예수께서 지상에서 행하는 일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일들은 단순한 기적들이 아닌 표징들로서 생명을 주는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고 보여주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들’은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에(죽음)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일들이 ‘끝없이’ 계속됨을 뜻한다.

오늘 복음의 말씀들은 우리의 만남에 대한 심오한 가르침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 예수께서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시다는, 이른바 성부와 성자의 위격적인 일치 또는 상호내재는 우리를 신적인 만남에로 초대하는 하느님의 사랑과 배려라 할 수 있다. 만남의 상호내재의 차원을 우리는 어떻게 살 수 있는가?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며 살아간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만남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사랑에 기초한 당신의 체험 안에서 가르쳐주신다. 여기서 우리는 끼어들기(타자의 내면으로 들어가기)와 열어주기(타자를 맞아들이기)를 만남의 기본 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의 삶, 곧 그들의 아픔과 슬픔, 기쁨, 외로움 등 전인격적인 삶에 끼어들어야 한다. 이것은 간섭이 아니라 서로 안에 사랑으로 머묾으로써 깊은 인격적 친교와 나눔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상대가 내 뜻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라는 것이 결코 아니요, 상대의 삶이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물며 유지되도록 돕는 것이다. 한편 ‘타자를 맞아들이기 위한 열어주기’는 내편에서 형제자매들의 형제적 권고와 배려, 사랑어린 말과 몸짓이 들어와 자리 잡도록 ‘사랑의 빈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근본적으로 생명과 사랑이신 주님이 살아계시는 타자를 받아들여야 살 수 있는 존재이며,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목소리를 통하여 당신을 계시하시고 우리를 키우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서로의 인격이 서로 안에 자유로이 그리고 거침없이 자리 잡게 될 때 우리는 바로 그분과의 일치에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삶의 ‘성사화’이다. 내 안에서, 형제자매 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일하시도록 할 때 우리의 만남은 거룩한 친교가 될 것이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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