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02 조회수1,310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5월 2일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Have I been with you for so long a time
and you still do not know me, Philip?
Whoever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Jn.14,9)
 
 
제1독서 사도 13,44-52
복음 요한 14,7-14
 

몇 년 전에 어떤 일로 큰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 그렇다고 누군가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기에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주님의 도움을 청할 뿐이었지요. 그리고 며칠 뒤, 그날 역시 밖으로 나가 묵주기도를 하고 사제관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에 힘이 들어 잠시 쉴 겸 공원벤치에 앉아 있을 때였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공원 광장에서 운동을 하시는 분, 서로 팔짱을 끼고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 서로 사진을 찍는 친구들 등등...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밝게 웃으면서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는 그들 모두가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것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운동하고, 데이트하고, 즐기는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지 당신들은 모르실거에요.’

그리고 저 역시 지금의 이 문제들이 없는 상태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평소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매일이 가장 행복한 순간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행복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어렵고 힘든 그 순간에 비로소 행복의 순간이 그리 멀리 있었던 것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 당시의 문제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해결되었지요. 그리고 제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매 순간 기쁘게 살아갈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 행복을 느끼려고 노력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미사를 봉헌하는 그 순간, 맛있는 식사를 하는 순간,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눕는 그 순간 등등의 상황에서 “아~~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느끼면서 주님께서 함께 해주고 계심도 깨닫게 되네요.

오늘 복음에서 필립보는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라고 청을 드립니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하느님 아버지를 그분의 외아드님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서 아버지의 본성에 속하는 신성을 충분히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아직 믿음의 눈이 없기 때문에, 주님에게서 드러나는 신성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이렇게 말하곤 하지요.

“하느님 봤어? 그분과 대화해 봤어? 보지도 못하고 대화도 하지 못했는데 하느님이 어디에 있어?”

그러나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매일이 바로 행복의 순간이었다고 말했던 것처럼, 우리의 평범한 매일 안에서도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신성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우리와 늘 함께 하시고 지켜주시는 하느님을 우리의 일상 삶 안에서 믿음을 통해 충분히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믿음 없음이지요. 그 믿음 없음이 예수님을 보고도 하느님을 보게 해 달라고 청하는 필립보 사도처럼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입니다.

일상의 삶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합니다. 그 혜안을 통해 하느님을 느끼고 체험하는 사람은 어떤 순간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 행복하다.”

아름다운 것들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기는 쉬웠다. 하지만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깨달음은 어렵다(성 프란치스코).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행복'. 행복은 쉽게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모든 것(십자가의 성 요한)

모든 것을 맛보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맛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지식에도 매이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이 아직 맛보지 않은 어떤 것을 찾으려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야 하고,
소유하지 못한 것을 소유하려면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곳으로 가야 한다.
모든 것에서 모든 것에게로 가려면
모든 것을 떠나 모든 것에게로 가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로 함이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주님이라는 모든 것에 함께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의 것만으로는 그분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 진짜 모든 것인 주님과 가까워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신 모든 아타나시오 분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