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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하느냐, 내 안의 그분이 하시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08 조회수891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내가 하느냐, 내 안의 그분이 하시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인간의 타고난 의와 하나님의 의)

 

이 묵상은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의 글입니다.

여기서 변증이란 가톨릭교회 안에 만연해 있는 해방신학 이단에 대항하여 교회를 지키기 위한 글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단순히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이요,

초대교회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cafe.daum.net/yoondaniel을 참고 하십시오.

 

 

성경은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의 생명과 인격과 모든 것으로 우리 안에 분배하시는 하나의 경륜, 곧 영원한 계획을 갖고 계심을 보여준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람은 창조된 후에 타락했다.

타락함으로 사람은 하느님의 의의 요구를 위반했으며, 결과적으로 사람은 하느님의 의에 따라 정죄 받았다. 이제 타락한 죄인인 우리와 하느님 사이에 정죄의 문제가 있게 되었다.

모든 죄인들, 곧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하느님의 의를 어김으로써 정죄 아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정죄를 없이하는 하느님의 칭의가 필요하다.

하느님의 칭의가 아니고서는 하느님의 정죄를 없앨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

 

구약 아래서의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의에 근거하여 하느님께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들의 의는 하느님의 칭의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로마9,31; 10,3).

하느님의 칭의는 최고의 표준, 곧 하느님의 의 표준에 따른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 목적을 위하여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의로 우리에게 주셨다고 명백히 말한다.

1코린1,30절은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말한다. 곧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넣으시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가 되도록 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대한 그리스도의 모든 것에 관한 첫 번째 항목은 하느님의 의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를 세울 필요가 없다!

인간의 정의란 그것이 선한 것일지라도, 하느님의 눈에는 그 추악한 죄성이 드러날 뿐이며, 또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정의의 주장은 극히 주관적이므로 전쟁과 죽음을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정의를 구현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비록 우리가 우리의 의를 어느 정도까지는 세울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 의는 하느님의 의의 표준에 절대로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의는 황토와 같은 반면에, 하느님의 의는 빛나는 금과 같다.

인간의 의의 표준은 너무나 낮고 낮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우리의 의를 하느님께 가져간다면, 그것은 하잘 것 없는 것이 된다!

이것이 성경에서 타락한 사람인 어떤 육체도 율법을 지키는 자신의 공로를 통하여 하느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이다(로마3,20).

우리가 무엇을 하든, 율법에 따라 아무리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하느님의 요구에는 부응할 수 없다. 따라서 하느님의 칭의의 표준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의만이 그것에 이를 수 있다.

 

구약은 우리에게 좋은 예시를 주는데, 이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사람의 의는 하느님의 칭의의 표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곧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은 하느님의 의를 예표한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느님으로부터 아들을 얻을 것이며, 이 아들이 땅 위의 모든 열방에게 축복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창세15,3-5; 18,10,14; 22,18).

 

그러나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이는 그녀의 하녀 하가르에게서 아들을 낳을 것을 제안하였고, 아브라함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창세16,1-4, 15).

그러한 방법으로 아브라함이 낳은 아들인 이스마엘은 하느님께 거절당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말씀하셨다(창세21,10-12).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스스로 생산한 것은 하느님께 계수(계산)되지 못했다!

오직 하느님께서 주신 아들인 이사악만이 계산되었다!

창세기15,6절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었고, 그의 믿음이 하느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의는 이 두 아들, 곧 이사악과 이스마엘을 비교함으로써 알 수 있다!

이스마엘은 확실히 하느님의 의에 부합되지 않았다!

오직 이사악 만이 하느님의 의에 부합되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의와 부합하는 아들을 얻을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믿음에 의한 것이었다!

사도 바오로도 로마10,3절과 필리3,9절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의 의는 이스마엘을 생산할 것이므로, 그것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 전혀 아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어야만 한다.

믿음과 순종은 분리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주(Lord)로 믿는다는 것에는 주되신 그리스도께 범사에 순종하겠다는 결단이 포함되기 때문이다(로마1,5; 16,26).

그럴 때 우리는 그분에게서 무엇인가를 받게 될 것이며, 그것은 바로 오늘날의 이사악이신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요,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느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하느님의 의이므로, 이것만이 우리의 축복이 된다! 알렐루야!

오늘날 하느님의 의도는 그리스도 안에 체현된 그분 자신을 만유로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을 먼저 우리의 의로, 그 다음 우리의 생명으로, 우리의 인격으로, 우리의 만유로, 마지막으로 우리의 기업으로 받아야 한다!

 

어떻게 그리스도가 하느님에 의하여 우리에게 주신 바 된 하느님의 의가 될 수 있는가?

먼저 하나님의 의로서 그리고 우리의 대치물로서 그리스도는 죽으셔야만 했다.

하느님의 의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대신하는 죽음을 죽으실 것을 요구하며, 그리스도는 그렇게 순종하셨다.

그분은 죽으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이 그분을 기념하며 그분을 누리도록 만찬을 세우셨다. 만찬을 세우실 때, 그분은 잔을 들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22,20).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피와 관련한 하나님의 의의 사상과 관련된다!

 

우리가 하느님의 용서하심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이고, 하느님의 용서하심은 하느님의 칭의와 동등하다!

하느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실 때, 그분은 우리를 용서하시며, 하느님이 우리를 용서하실 때, 그분은 우리를 의롭다 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 용서함 또는 이 칭의는 완전히 그리스도의 죽음에 근거한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의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킨다.

 

내가, 내 스스로 행하는 모든 것은 모양만 있는 종교요 율법이며 이스마엘이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그분이 하시도록 허락하는 것이 믿음이요 순종이며 생명의 말씀이며 이사악이다! 알렐루야!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풍성한 포도열매 맺기를 갈망하는 빛나는 하루가 되시기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라!

알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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