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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5.12.부활6주간.화.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도회 강론방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12 조회수559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부활 6주 화요일(요한 16,5-11)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부분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승천과 성령의 파견을 예고하시는 장면이고, 뒷부분은 세상에 대한 성령의 역할에 대한 말씀입니다.

   뒷부분은 내일 복음과 함께 보도록 하고, 오늘은 앞부분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승천을 암시하십니다.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요한 16,5)

 

   이어서, 근심에 가득 차 있는 제자들에게 보호자이신 성령의 파견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요한 16,7)

 

왜 그러시는 걸까? 왜 꼭 당신이 가셔야만 그분을 보내시는 것일까?

아니, 성령은 이미 당신과 함께 계시는 분이 아니신가?

 

   아우구스티누스는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는 이 말씀을 해설하면서, 그리스도를 육에 따라서만 아는 한 성령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라고 말합니다. 동정녀의 태에서 잉태된 종의 모습이 우리 육체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야,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 자체에 순수한 마음의 눈을 두기 시작하게 된다는 말씀이다.”고 알아들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도 내가 나의 육체를 너희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지 않으면, 보호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너희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끌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설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함께 같이 계실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함께 계시지만, 우리의 죄가 아직 용서되지 않은 까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하느님과 우리의 화해가 이루어져야 그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까닭입니다.

   그것은 마치, ‘어제가 가야 오늘이 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함께 있으면서도, 오늘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차원에서,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구원하실 수 있으시지만 아들을 통하여 그것을 이루시면서 아들을 드러내시듯이, 예수님께서도 모든 일을 이루실 수 있지만 성령의 존귀함을 드러내시기 위하시는 까닭입니다. 그것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본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아버지께서는 아들과 성령을 드러내시고, 아들은 아버지와 성령을 드러내시고,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을 드러내시는, 자신을 통하여 자신이 아닌 다른 분을 드러내시는 삼위일체 사랑의 특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항상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을 드러낼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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