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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의 체험과 선포(1)/ (1코린2,1-4)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13 조회수719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십자가의 체험과 선포(1)/ (1코린2,1-4)

 

 

<이 묵상은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의 글이다.

……

그런데 건방지게 왜 떠들고 난리냐?

왜 너냐? 네가 뭔데? 라고 질문할 수 있겠다.

그렇다!

옳은 말이다!

나는 내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부족한 존재임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러나 다만 변증의 글을 쓰라는 내 안에서 강하게 밀어내시는 그분의 오랜 부담에,

그것도 나는 할 수 없다고 이리 저리 온갖 핑개와 도망을 다니다,

겨우 1년 전쯤부터, 순종함으로 이 글을 쓸 뿐이다!

무지 무지 큰 바위에 계란 던지기라는 것을 처음부터 너무도 잘 안다!

그러나 나는 그 나머지 부분은 그분이 하신다는 강한 믿음과 확신이 있다!

나는 그래서 이 글들을 쓴다! 아멘.>

 

 

바오로 사도의 1코린2,1-4절을 묵상해보자.

나도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사실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성경 말씀에서 우리는 세 가지 요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첫째는 바오로가 전하는 메시지요, 둘째는 바오로 자신이며, 셋째는 바오로가 메시지를 선포하는 방식이다!

 

바오로의 메시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

바오로 자신은 하느님의 생명을 전하는 산 통로였기 때문에, 그가 선포하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는 십자가의 복음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구원시켰다.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바오로의 메시지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그는 이 문제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십자가의 메시지를 전하는 바오로 자신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 점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바오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실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바오로 자신은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었다!

십자가의 말씀을 전하는 데는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여기서 바오로는 인간적으로는 자신감이 조금도 없었다.

약함, 두려움, 떨림, 곧 그가 자신을 전혀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긴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임을 나타내는 확실한 표징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라2,20)라고 바오로는 선포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1코린15,31)고 말했다!

바오로는 십자가를 선포하기 위하여 날마다 죽어야 했다!

자아의 진정한 죽음이 없다면, 그 사람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생명이 흘러 나갈 수 없다!

십자가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비교적 쉬울지도 모르나, 십자가를 전하는 바로 그 사람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사실상 사람들에게 어떤 주어진 문제를 인식시키고 이해시키는 것은 오히려 쉽다. 사람들이 어떤 교훈을 머리 속으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신자나 불신자나 할 것 없이, 우리가 그 교훈을 분명하게 설명하기만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생명을 얻고 하느님의 말씀하시는 바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시고 더욱 풍성한 생명을 주셔야만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역하는 모든 일의 목적은 하느님의 생명을 사람들의 영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통로가 되는 것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만 한다!

 

우리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는다면, 십자가의 말씀을 전할 수 없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는다면, 우리가 읽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십자가의 생명을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 정확히 말해서 십자가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 십자가를 설교하기는 적합하지 않다!

 

사도 바오로의 메시지는 십자가였고, 바오로 자신은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었다. 십자가를 전함에 있어서 그는 십자가의 방법을 사용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십자가의 정신으로 십자가의 메시지를 전한다!

오늘날 교회는 십자가의 메시지가 줄어들고, 그 또한 십자가의 정신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오늘날의 교회는 온통 함량 부족이다!

사제들이 독점하고 있는 강론의 주제나 깊이는 너무나 세상적이며, 인본주의이고, 심지어는 너절하고 천박한 수준이기도 하다!

이들은 십자가의 체험에 의한 생명의 전달자들이 아니므로 듣는 신자들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나는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삶 자체가 자칫 믿음도 생기지 않고, 고난은 물론 십자가의 체험도 없는 이러한 상태에서, 사회 교리, 사회정치학, 종교의 정치 참여, 사회정의와 같은 해방신학적 접근이 이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었고, 하느님의 의보다는 자신들의 의와 신념과 의식과 교리를 키워나가는 구약으로 회귀하는 이상한 종교 집단으로 전락했다고 나는 생각해 보는 것이다!

(물론 귀감이 되는 영적인 사제들도 많이 계심을 분명히 하는 바이다!)

 

영적 실재는 진실한 것이다.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은 진리이다!

흔히 어떤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접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짓에 빠지는 수가 많다.

그는 거짓에 속아서 속박을 받는다. 그는 어떤 사물의 참된 성질을 분명히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옳지 않으나, 자기 자신은 분명히 옳다고 여긴다!

그러한 상태를 우리는 망상이라고 부른다!

망상에 빠진 사람들은 하느님의 빛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사람은 자기의 헛된 망상에서 빠져 나올 길이 없다!

 

미사를 드릴 때, 차례에 따라 말씀의 전례에서 성경의 말씀을 읽는 것은, 사실 내용도 모르면서 학생들이 교과서를 읽듯이 읽어대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리고 강론에서 사제는 오늘 본문의 말씀과는 별로 상관도 없는 세상 돌아가는 잘 이해도 되지 않는, 그들만의 이상한 말들을 엄숙하게 말한다.

모양은 있되, 그것은 생명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것은 위험한 망상일 수가 있다!

 

바오로는 코린도 교인들에게 편지하기를 나도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 바오로는 십자가를 전함에 있어서 지혜롭고 고상한 말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 정신으로 나아갔다.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 졌습니다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십자가 정신이다!

 

십자가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나 실상은 하느님의 지혜이다.

바오로의 승리는 그가 참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라는 사실에 있다!

그러므로 바오로는 십자가의 정신과 태도로 십자가를 선포할 수 있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체험이 없는 사람은 십자가의 정신으로 충만해질 수 없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십자가의 메시지를 선포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못 된다.

바오로의 경험을 보면 우리들의 실패하는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생명을 공급받고 변화된 삶을 누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분명히 설교자들의 잘못이다!

하느님의 말씀의 효력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하느님의 생명이 흘러 나가는 것을 방해한 것이지, 하느님의 말씀이 효력을 상실한 것은 아니다!

 

십자가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 그래서 십자가의 정신이 결핍되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생명을 나누어 줄 수가 없다!

우리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겠는가?

 

나의 글은 이곳에 올리기에는 너무 긴 것 같다!

짧게 쓰려고 해도 잘 되지 않고, 사실은 이것도 나에게는 모자란다!

이 글의 나머지는 내일 십자가의 체험과 선포(2)에 올리기로 하였다.

절충하는 방법을 찾은 셈이다!

그분으로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알렐루야! 아멘.

 

http://cafe.daum.net/yoondaniel  참고 하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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