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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의 체험과 선포(2)/ (요한3,14-15)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14 조회수592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십자가의 체험과 선포(2)/ (요한3,14-15)

    

<이 묵상은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의 글이다.

……

그런데 건방지게 왜 떠들고 난리냐?

왜 너냐? 네가 뭔데? 네가 뭘 안다고? 라고 추궁할 수 있겠다!

그렇다!

옳은 말이다!

나는 내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부족한 존재임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러나 다만 변증의 글을 쓰라는 내 안에서 강하게 밀어내시는 그분의 오랜 부담이 있어,

그것도 나는 그런 능력이 없다고 이리 저리 온갖 핑계와 도망을 다니다가,

겨우 1년 전쯤부터, 순종함으로 이 글을 쓸 뿐이다!

무지 무지 큰 바위에 계란 던지기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러나 나는 그 나머지 부분은 그분이 하신다는 강한 믿음과 확신이 있다!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며 글을 쓴다는 것, 몸은 지치고 피곤하지만, 내 영은 더욱 빛난다!

나는 그래서 이 글들을 쓴다! 아멘.>

 

* * * * *

 

생명이란 우리의 삶에서 체험하는 하느님의 말씀 혹은 우리가 선포하기 이전에 체험한 메시지를 말한다.

십자가의 생명은 주 예수님의 생명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메시지를 체험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느님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곧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십자가가 우리의 생명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생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없다. 우리의 수고가 헛되고 헛된 이유는 우리가 체험하지 못하여 우리 안에 있지도 않는 십자가를 열심히 전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아는데 있다!

진정으로 전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그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께서 그를 통하여 일하지 않으실 것이다!

 

천주교회 내의 이와 관련한 사정들을 보면,

우리가 가끔 듣는 십자가의 말씀은 사실상 대부분 자기들의 것이 아니라 빌려 온 것이다!

곧 그것은 자기 두뇌의 힘으로 여러 권의 책에서 수집하거나 찾아 모은 것들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로,

강론을 하는 분들의 모든 탐구, 연구, 독서, 십자가의 신비에 관한 이야기들을 다방면으로 경청하는 일, 등이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전하기 위한 것이 될까봐 걱정이 된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의 생명을 소흘히 생각하다가는 마침내 영적 기근에 처하고 말 것이다!

 

오늘날의 강론은 마치 신자들이 십자가의 이론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생명이 수반되지 않는 강론 때문에 신자들은 십자가를 체험하는 데까지 전진하지 못하고 십자가를 지식적으로 아는 데서 머무르게 된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의식이나 권위 세움이나 말의 조리 등으로 신자들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기만족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나는 여기서 잘못된 복음이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믿음 자체가 이미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설교자가 생명을 나누어 주지 못하면 신자들의 영적 진보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중점이 바로 이것이다!

 

신자들에게 생각과 말만 심어 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지금 강론을 독점하고 있는 사제들의 가슴에 이 중점들이 깊이 새겨져, 그들이 지금까지 수고한 일들이 헛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이 왜곡되거나 숨겨지고 있다!

슬프게도 그것은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건축되려면, 영의 말씀, 곧 생명의 공급 외에 또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은 사람들은 십자가의 말씀을 선포할 수 없고, 선포할 적격자도 못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십자가가 먼저 자기 자신에게 못 박혀야만 한다. 곧 그들이 설교하는 그 말씀은 먼저 그들의 생애 깊숙한 곳으로 타 들어가야 하며, 그래서 그들의 삶이 살아 있는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

 

나의 주장이 너무 비현실적인가?

아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생명의 말씀에 목말라 있으며, 천주교회는 그 의미도, 그 원인도, 그 대안도 모르고 있다!

사실 온 사방에 그럴듯한 겉모양뿐이다!

대다수 평신도들은 느끼는데, 사제나 교회지도자들은 안주하면서 헤어날 줄을 모른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한6,55).

만일 우리가 믿음으로 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한다면, 그것이 곧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일이 된다. 이러한 영적 의미에서 먹고 마시는 것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다!

육신의 삶에서도 먹고 마신 후에 그 먹은 것을 소화시켜야 우리의 일부, 곧 생명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너무나 자주 지성만 사용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책에서 읽은 것과 인터넷의 정보를 이용하거나, 정치나 사회적 내용을 설교 내용으로 하는데, 여기에 바로 실패의 원인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생각과 주제들을 많이 가지고 있고, 신자들이 아무리 흥미를 가지고 주의 깊게 듣는다고 할지라도, 하느님의 생명을 그들에게 나누어 줄 수 없다면, 그들의 사역은 거기서 끝난 것이다!

 

강론대에서 십자가를 선포한다고 해도 본인 자신이 십자가의 체험이 없다면, 십자가의 생명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없다!

그들이 한 일은 고작 신자들에게 생각과 사상을 준 것 뿐이다!

생명이 아닌 그러한 종류의 생각과 사상의 전달은 결국 신자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우리 믿는자들에게 지금 결핍한 것은 훌륭한 사상이나 이념이나 지식 따위가 아니라, 성령으로 인한 하느님의 생명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우리는 우리가 없는 것을 남에게 줄 수 없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 사상이나 신념이나 지식, 주의, 주장뿐이라면, 우리는 이것들만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을 뿐이다!

만일 우리의 삶 가운데서 죄와 자아를 이기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체험하지 못했다면,

주님을 따르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주님과 함께 고난당해 본 체험도 없다면,

십자가의 말씀에 관한 지식이 고작 책이나 남의 체험에서 얻은 것이라면,

그들의 삶 가운데서 직접 체험한 것이 아니라면,

틀림없이 우리는 생명을 전달할 수도, 전달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처리됨으로써 성령의 통로가 될 때만이, 곧 성령은 우리의 생명을 통해 그분의 생명을 쏟아 내시어 다른 사람의 메마른 생명들을 적셔 주실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심리학이나 시나 수필이나 능변이나 이론을 가지고 죄인들을 구원하거나 성도들을 세우려고 애쓴다면 그것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

 

만일 그들의 강론대에서 하는 말의 배후에 성령께서 그의 권위와 능력으로 역사하지 않으신다면, 신자들은 그들의 생애에서 아무런 변화를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사실은 우리에게 너무나 엄중한 문제이다!

 

만일 성령께서 설교자의 생명으로부터 흘러나가 다른 사람의 영에 도달하도록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성령을 받을 수 없으며, 그들이 전파한 말씀을 실행할 능력도 얻을 수 없게 된다.그러므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설득력 있는 말이 아니라 성령의 생명과 능력이다!

 

우리에게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써 배우는 교훈이 있다.

요한3,14-15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2,32-33절에 나는 땅에서 들려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당신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실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이끌어 영적 생활을 얻게 하시기 전에 먼저 십자가에 못박히셔야만 했다. 그 자신이 먼저 죽어 그의 속에서 역사하는 십자가를 안팎으로 경험하셔야 했으며, 그렇게 하심으로써 진정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되셨다.

그 결과 그는 모든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을 얻으셨다.

 

마찬가지로 만일 우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 생활을 얻게 하려면, 우리도 십자가 위에 들려야 한다. 그래야만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자신의 생명을 흘려보내실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생명의 원천이 십자가이라면, 생명을 공급하는 통로도 십자가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 부분의 깊이는 http://cafe.daum.net/yoondaniel어느 가톨릭 평신도의 하느님 말씀 묵상의, 2014, 7, 6일자 주일복음말씀묵상, 편을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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