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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15 조회수835 추천수12 반대(0)

국민연금,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에 대한 말이 많습니다. 여당, 야당, 정부는 분명 모두 국민을 위해서 대책을 마련하는데, 방법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연금은 대상자가 일정부분 비용을 부담하고, 해당 기관에서 일부 지원을 해서 은퇴를 하면 매월, 혹은 일시불로 수령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은행이자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고령화로 인해서 연금을 수령해야 할 대상자가 늘고 있으며, 출산율이 적어져서 연금을 부담할 사람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산출한 연금수령액으로 지불을 하면 연금은 줄어들고, 나중에는 연금을 내지만 수령액이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연금에 대한 운용을 투명하게 하고, 연금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대인들은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을까요? 가끔은 그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느님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분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을 주인으로 생각하였고 자신들은 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주셨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주신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리에 계시고,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이끄심에 따라야 하는 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표징을 보여 주셨고, 말씀으로 새로운 권위를 보여 주셨을 때는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따랐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금기시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 계시고, 예수님은 하느님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생각과 말은 유대인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종교도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종교는 없습니다.

 

뼛속까지 유대인이었던 바오로 사도는 그런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박해하였습니다. 그런 바오로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박해하였던 예수님을 통해서 아버지와 같은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하느님의 생각을 바꾸었고, 새롭게 복음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큰 은총과 특전을 받은 신앙인들입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는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체를 모심으로써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서울대교구의 사목방침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입니다. 새로운 복음화는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새로운 복음화, 새로운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몸소 사람이 되신 것은 겸손의 복음화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십자가를 지신 것은 희생의 복음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드린 것은 봉사의 복음화입니다. 참된 행복은 무엇을 소유하고, 더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행복은 겸손과 희생 그리고 봉사와 사랑을 통해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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