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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17 조회수1,047 추천수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천주교는 다른 종교, 특히 개신교로부터 
          우상숭배의 종교라고 비판을 많이 받습니다.
          성인들, 특히 성모 마리아를 
          숭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천주교 신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당연히 반박하지요.
          성인들이나 마리아를 믿거나 숭배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공경하고 전구를 구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얘기해도 개신교 믿음에 기초해서 보면
          우상 숭배를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개신교 교리에서 하느님과 나 사이에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인간은 그 어떤 인간도 중재자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나 사이에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재자이시기에
          인간은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청원을 할 때
          직접 하느님께 청하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청할 뿐이라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 유대교는 더더욱 우상숭배를 경계하고,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개신교도 우상숭배를 하는 종교지요.
          유대인들에게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조차 우상숭배니까요.
             
          이에 비해 천주교는 하느님과 나 사이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간선도로에 이어지는 
          수많은 성인들의 길이 있습니다.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당신 이름으로 모인 곳에 당신이 함께 계시고,
          사람들이 함께 마음 모아 청하면 
          다 들어주시겠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이 말씀은 
          나 혼자 있는 곳에는 주님께서 안 계시고,
          나 혼자서 무엇을 청하면 
          안 들어주시겠다는 뜻이 아니지요.
             
          하느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지요.
          홀로, 배타적으로 하느님 앞에 있는 
          매우 내밀하고 인격적인 관계의 차원과
          공동체와 함께 하느님 앞에 있는 
          통합적 관계의 차원이 있지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이름으로는 기도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성모님의 이름으로는 기도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베드로의 이름으로는 기도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는 석가모니와 공자와 다른 개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개별성을 고집하지 않는 
          모든 이의 집합이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모든 이름이 합쳐진 이름입니다.
             
          우리 인간은 인간 때문에 하느님을 못 만날 수 있고,
          인간 때문에 하느님을 만날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서로에게 우상이 될 수도 있고,
          서로에게 하느님의 중재자, 사다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이름은 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인 
          나만의 이름이 될 수도 있고
          나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이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모인다면 말입니다.
             
          이런 면에서 프란치스코는 아주 탁월합니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께서 피조물을 통하여(Per) 
          은총을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의 기도와 찬미가 피조물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올라간다고 얘기합니다.
             
          피조물도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하느님과 나 사이의 통로라는 겁니다.
          그는 구더기를 구더기로만 보지 않고 
          구더기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보고,
          바위를 바위로만 보지 않고 나의 바위, 
          성채이신 주님으로 보곤 하였지요.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지금까지 
          당신 이름으로 청하지 않았는데
          이제부터 당신 이름으로 청하라 하시며 
          그러면 다 들어주실 거라 하십니다.
          우리도 지금까지 홀로 하느님께 청하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함께 
          하느님께 청하는 우리가 되어봅시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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