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십자가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2코린4,12; 1베드2,23)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18 조회수1,352 추천수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십자가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2코린4,12; 1베드2,23)

 

       

<이 묵상은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의 글이다.

여기서 변증이란 가톨릭교회 안에 만연되고 있는 해방신학 등 이단들에 대하여 성경의 말씀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의 역사는 각종 이단들에 대한 변증과 변호의 역사였다!

신약의 곳곳에서 당시의 심각성을 감지할 수 있다.

그들은 어느 날 밤에 밀밭에 몰래 숨어들어와 악한 자가 뿌린 가라지이다.

 

마태13,25-30절에서 예수님은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제자들의 요청에 따라 36-43절에서 그 의미를 설명해 주셨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자녀들이고, 세상의 불신자들이 아니다.

가라지는 마치 출애굽 때 그들 가운데 섞여 있던 혼잡한 무리들처럼,

오늘날 밀들과 함께 섞여 있는 해방신학 이단자들, 인본주의 현대주의자들, 교회의 분열자들로 매시대마다 가라지가 있어왔다.

사단은 광명의 천사, 의의 일꾼으로 언제나 진짜를 가장한다(고후11,14-15).

 

517일자 가톨릭마산신문에는 오늘도 여전히 성염 요한 보스코 전 주 교황청 한국대사라는 분의 가톨릭 칼럼이 실려 있고,

더 놀라운 일은 이 신문 알림난에 다음과 같이 광고까지 있었다!

<정의평화위원에서 알립니다, 교구청 지하 강당에서, 교회와 사회교리강좌를, 매주 목요일마다, 우리나라의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는 미사, 강사는 성염 전 주 교황청 한국대사가>

이 무리들은 해방신학에 심취한 이단자들로, 정의 구현과 정의 평화를 내세우며 성경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왜곡하면서 교묘히 교회를 타락시키고 있다!

놀랍게도, 가라지를 목요일마다 뿌리겠다고 공식적으로 광고까지하고 있다.

무섭다! 그들의 집착이!

그러나 주님은 가라지를 세상 종말에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버리신다고말씀하셨다!

 

마산교구청이 온통 해방신학 이단자들에게 점령당한 꼴이다!

거짓선지자인 이단들의 특징은 세월이 흘러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핍박보다도 위조품을 더 주의해야만 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 주위의 신부들이 진짜인지, 위조품인지 확인해야만 한다!

많은 구매자들이 속아서 구매 할 만큼,

위조품과 정품은 거의 비슷하지만, 위조품은 다른 독성의 이물질을 숨기고 있다.

그러나 노련한 구매자는 위조품을 바로 안다!

 

어떻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을 들어보면 영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전하는 말들은 위조품이므로 생명을 느낄 수가 없다!

곧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그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2코린4,12)

 

오늘날 더욱 놀라운 것은 가톨릭교회와 교회지도자들이 이들 이단들에 대한 공식적인 변증이나 경고가 전무하다는데 있다!

그들 또한 동조자들이며, 한심한 방관자들이다!

 

나의 간절한 기도와 변증을 위한 하느님 말씀묵상이,

가톨릭교회의 조직, 곧 거대한 바위에 계란 던지기임을 나는 안다!

그러나 내가 이 일을 계속함은,

그 나머지는 그분께서 능히 이루시리라는 것을 믿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아멘!

(전문은 어느 가톨릭 평신도의 말씀 묵상http://cafe.daum.net/yoondaniel 을 참고하시길!

 

* * * * * * *

 

2코린4,12절은 그리하여 우리에게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는 생명이 약동합니다라고 말한다. 개혁성경은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라고 번역한다.

내가 가장 좋아 하며, 수시로 묵상하는 말씀 중의 하나이다!

코린도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4장을 읽으면, 주님의 종 바오로 사도의 모든 사역의 비결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내적 체험을 깨닫게 한다!

코린도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은 사도 바오로의 자서전이다. 나에게는 신약성경 중에서 가장 영적인 책이다. 당신도 시간을 내어 영 안에서 바오로의 영을 느껴보라!

알렐루야!

 

바오로는 날마다 죽었다!

그는 십자가의 죽음이 그 안에 깊이 역사하도록 하여, 다른 사람들도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십자가의 죽음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줄 십자가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바오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통하여 생명을 얻게 하려고, 죽음의 자리에 기꺼이 나아갔다. 오직 죽는 사람만이 생명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이 죽음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이 죽음은 죄에 대한 죽음이나, 자아에 대한 죽음이나, 세상에 대한 죽음 이상의 것이다!

이 모든 것보다 더 심오한 죽음이다!

바로 이 죽음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실 때 나타내신 그 정신이다!

주님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다. 그는 아무 죄도 없으셨다.

주님의 십자가는 주님의 거룩성을 선포하신 것이며,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죽음은 하느님의 뜻에 대한 전적인 순종이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란 무엇인가?

그 대답은 1베드2,23절에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에게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날마다의 삶에서 묵묵히 고난을 견디신 어린양 예수님의 정신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 사건을 보면서 되돌려 욕하려는 충동이 극에 달하지만, 그분은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긴 채 묵묵히 고난을 당하셨다!

 

이 죽음은 죄와 자아와 세상에 대한 죽음보다 한 단계 더 깊은 죽음이다!

십자가가 우리의 생명이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살아있는 십자가가 되기를 기원한다!

모든 일에서 십자가의 정신을 발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바오로가 사람들에게 생명을 나누어 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삶이 바로 십자가였기 때문이다! 바오로에게 쉼 없이 밀려온 그 수많은 죽음보다 더 진한 고난들을, 그는 묵묵히 참으면서,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신 주님의 십자가 정신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는 소극적으로는 아담에게서 온 악한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십자가로 나아갔으며, 적극적으로는 십자가를 자신의 생명으로 취하여 날마다 그것을 지고 살았다. 날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터득했으며, 그럼으로써 날마다 주 예수님의 생명을 나타냈다!

 

2코린4,10-11절은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알렐루야!

이 말씀은 너무나 심오하다!

 

예수님의 죽음이 나타나는 곳에 예수님의 생명이 드러난다. 곧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의 생명도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죽음으로 하여금 우리의 몸에서 죽이는 역사를 수행하게 한다면, 우리 속에 주님의 생명이 나타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바오로는 자신의 경험 가운데서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2코린4,8-10)라고 그의 체험을 증언하고 있다.

바오로는 주 예수님의 죽음이 그의 삶 속에서 역사하도록 했다(2코린4,12). 역사할 수 있는 죽음이란 십자가의 생명임에 틀림이 없다.

 

예수님을 위하여 바오로는 언제나 죽음의 자리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듣기 거북한 말이나 사람들의 강압적인 태도나 잔인한 박해나 터무니없는 오해 등에도 불구하고 바오로는 주님을 위하여 기꺼이 그 모든 것을 견딘 것이다!

그는 그 고난에 반응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이 나타나도록, 그 죽음의 인내의 결과, 바오로 안에서 능하신 그분께서 일하시게 함으로써, 마침내 그 일이 아버지의 뜻대로 성취되도록 그분의 생명을 나타났다는 말이다! 알렐루야!

 

바오로는 죽음에 넘겨질 때에 침묵을 지켰다. 12군단의 천사들은 파송해 주실 것을 아버지께 요청할 수 있었던 주님이 침묵하신 것처럼, 바오로는 그 많은 역경 속에서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회피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예수님의 살아있는 죽음, 곧 십자가의 생명과 정신이 그의 속에서 역사하게 하여, 모든 행동에서 십자가의 정신을 보여 주었다!

그 십자가는 바오로의 생명 속에 얼마나 깊이 역사했는가!

우리도 우리 몸에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령의 통로가 되는 것!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뜻이며, 신약 정신의 전부이다! 아멘.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소유하기를 기대한다면, 먼저 그와 동일한 십자가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불같은 환난과 역경들을 통해 십자가가 우리 마음속에 아로새겨질 때에만 우리가 그것을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재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생명이란 주님의 산상설교(마태5-7)를 진실로 실천하게 하는 삶이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12)

여기서 너희는 당시 코린도 교회 신자들을 의미하는 동시에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들은 바오로의 청중들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그의 경험 속에 역사했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의 생명이 청중의 가슴 속에 역사하여 그들이 영적 생명을 얻게 할 수 있었다!

 

바오로 사도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설교와 사상과 나무 십자가와 지식이나 교리가 아니라, 주 예수님 자신의 영적 생명이었다. 이 영적 생명은 청중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여 마침내 바오로가 설교한 메시지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말뿐인 역사가 아니라 하느님의 초자연적 생명과 능력의 역사였다!

이 역사는 청중의 메마른 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열어 주었고, 그로 인해 하느님의 사도가 선포한 십자가의 생명을 그들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중점이다!

 

성령의 역사의 목적은 우리를 진실, 실재 속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에게 계시를 주시는 목적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여 과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먼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실재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를 영적 실재로 인도하기 위해서, 성령께서는 그 사람을 많은 시련과 훈련 속으로 이끄셔야만 한다!

곧 십자가의 죽음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전해줄 수가 없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주시고, 고난을 통하여 십자가의 생명을 체험하게 하신다!

 

주님의 십자가의 생명을 체험하는 지름길은 없다!

교회생활이 1, 5, 10, ,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영적인 일에서 조금도 증가된 것이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가난한가!

가난한 이유가 무엇인가?

성령의 징계와 통제의 결핍, 곧 십자가의 죽음을 체험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해방신학 등 교회내의 인본주의 이단들은 이러한 진리를 체험하지 못한 자들이라고 나는 감히 단언할 수 있다!

하느님 앞에서 부요하며 생명의 통로가 된 사람들은 모두 여러 가지 시련을 겪으며, 하느님과 함께한 역사를 지닌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들의 체험과 역사로 인해 교회는 부요해진다!

그러므로 많은 질병도 교회의 부를 위해 있는 것이고, 많은 문제점도 교회의 부를 위해 있는 것이며, 많은 고난도 교회의 부를 위해 있는 것이고, 많은 좌절도 교회의 부를 위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먹으면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삶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결여된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것이 그들이 것이 되지 못하므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해 줄 것이 하나도 없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당신의 체험으로 인도하는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이, 당신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도 영적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하느님의 가난한 자녀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당신 안에 계시는 주님의 생명으로 풍성한 한 주일이 되시기를!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