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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5,14; 요한8,12)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19 조회수1,607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5,14; 요한8,12)

 

<이 묵상은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의 글이다.

세상에서 교회만큼 사탄을 자극하는 것도 없으며, 동시에 빛과 어둠의 진상을 드러내는 교회의 그 빛이 사라지는 것만큼 사탄을 기쁘게 하는 것도 없다!

! 주 예수님!

살아있는 당신의 말씀으로 이 어둠을 비추기 위하여,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허락하옵소서! 아멘.>

 

 

소위 기독교 문명은 세상으로부터 좋은 감상과 존경을 얻었다. 세상은 이것을 수용하고 용인할 수 있으며 심지어 흡수하고 이용한다.

서구 유럽을 여행해보면,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인, 모양을 화려하고 웅장하되, 내용은 비어 있는 기독교 문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참기름 장사 집에는 참기름 냄새가 온통 배여 있지만, 그 냄새가 참기름은 아니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생명인 성령, 곧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세상이 만나면, 틀림없이 이 생명을 반대할 것이며 그것을 죽음으로 인도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문명은 세상과 그리스도를 조화시키려는 의도의 산물이다!

서구 문명에서 발견되는 기독교 문명은 세상과 혼합될 수 있음이 증명되었으며(우리나라의 기독교 문명에도 이미 구체적으로 발견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는 그것이 세상 편에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과 영원히 분리되어 있으며 결코 세상과 혼합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생명, 곧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성령이다!

 

비슷하면서도 이 두 가지 성질은 서로 적대 관계이며 조화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이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인성을 갖춘 사람과 가장 부족한 그리스도인 사이에도 공통적인 입장이 없으므로 비교할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타고난 선함은 우리의 타고난 출생을 통하여 얻은 것이며, 또한 그것은 우리 자신의 방법을 의지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인 선함은 요한 사도가 말한 것과 같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온것이므로 이 둘은 완전히 다르다(1요한5,4).

 

요한복음 1714-15절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하신 기도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우리의 주의를 끄는 간구가 있다.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주십사고 빕니다.” 아멘!

 

비록 그들이 악한 자와 그의 체계에서 구원을 얻었으나, 그들은 아직 사탄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마땅히 다해야 할 본분이 있는데,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부르심은 여기 곧 세상 안에서 이기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세상과 구별되게 창조하시어 세상에 두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구별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에게서 받은 은사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보호이며 보장이다.

 

예수님은 요한8,12절에서 나는 세상에 빛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선포는 조금도 우리를 놀랍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그분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태5,14)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빛이 되라고 권면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곧 세상의 빛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우리 안에 심겨진 하느님의 생명은 그 자체가 세상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설계하신 빛의 근원으로서, 세상에 처음부터 존재한 흑암을 드러내고, 세상 사람을 비추며, 세상의 참된 모습을 보게 한다.

 

마태5,16절에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라고 계속하여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서 분명한 것은 우리가 우리자신을 세상과 격리시킨다거나, 정의 구현을 위한 투쟁의 의미가 아니다. 세상과 격리시키는 것은 세상에 그 빛을 잃게 하는 것이며, 정의 구현을 위한 투쟁은 유다 열성당원이나 십자가전쟁을 유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착한 행실은 내가 내 신념으로 착한 행실을 하려고 결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생명, 곧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행한다는 의미이다!

 

로마서14,17절에서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 입니다라고 말한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무엇을 하고 안 하는가의 논쟁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씀은 하느님의 나라가 먹고 마시는 일에서는 조금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세상의 사회, 경제, 정치적 부조리를 변혁시켜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우리가 하느님을 위하여 결심하고 투쟁해야 한다고 할 때, 그것은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 인본주의 사상이며, 그 곳에는 하느님의 생명도 하느님의 영광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직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 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인도는 하느님의 성령께서 그에게 전달하시는 내재적인 속성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먹고 마시는낡은 범위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포기하는 금욕주의나, 세상에 정의를 구현하자고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투쟁하는 것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가 없다!

이러한 인본주의적 성경해석은 비성경적이다!

크게 잘못되었다!

하느님나라는 완전히 다른 영역에 속하고,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을 통하여 이긴 것이다! 알렐루야! 아멘.

 

하느님께서 특별히 우리를 세상(kosmos)에 두신 것은 세상이 무엇인지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우리는 신성한 빛을 발하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한 면에서는 세상이 얼마나 하느님을 멸시하고 거스르느지를 보게 해야 하고, 다른 한 면에서는 세상이 얼마나 무익하고 공허한지를 보게 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한다. 그들이 만일 기꺼이 돌아서려 한다면, 하느님은 반드시 그분의 빛으로 그들을 해방함으로써 허망한 세상을 벗어나게 하시고, 그들을 그분께 속한 영원한 생명의 풍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실 것이다.

 

세상에서 교회만큼 사탄을 자극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빛과 어둠의 진상을 드러내는 교회의 그 빛이 사라지는 것만큼 사탄을 기쁘게 하는 것도 없다!

오늘도 광화문 천막 안에서 교황의 사진을 걸어놓고, 붉은 깃발과 띠를 두른 종북 좌파들과 함께 세월호의 진상을 밝히라고 묵주를 손에 들고, 해방가를 부르며, 악한 자의 체계인 세상의 자랑과 칭찬과 자기들만의 정의에 완전히 매몰된 일부 가톨릭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보라! 카메라에 잡힌 그들의 눈, 영적인 것과는 전혀 무관한 충혈된 눈들을 보았는가?

그들은 그리스도 안이 아니라 망상 속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너무나 빗나갔다!

 

하느님의 신성한 미사 예배를 어떻게 서울 시청과 제주도 강정마을 등에서, 붉은 깃발을 들고 천박과 무지와 혼탁과 광란과 파괴와 죽음이 깃든 곳에서 세상에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그들만의 잘못된 신념을 위하여 봉헌할 수 있단 말인가?!

놀랍게도 그곳의 그들의 행위는 이 세상에 그들 방식의 정의 구현만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가장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 스스로를 인본주의 이단이라고 만천하에 드러내는 무대가 되었고, 심판대가 된 것이다!

신성한 예배를 악한 자의 광란의 잔치로 변질시킨 그 죄들을 당신들은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서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그 곳의 그들 외에는 인내하기 힘든 괴상한 우상숭배의 현장이라고 한탄하는 곡소리와 욕소리를 정녕 듣고 깨닫지 못하는가?

  

그곳에는 생명이 없다!

단언컨대 그것은 미사예배가 아니라 우상숭배요, 허세요, 종교적 우월감을 자랑하는 교만이요, 굴절된 자기들만의 신념을 표현한, 그들만의 신나는 더러운 굿판 이었다!

나의 표현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교회지도자들은 모르고 있는가?

그들은 아마도 비겁한 방관자들이요, 직무유기의 죄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 아니라 세상의 어둠이다!

 

하느님께서 특별히 우리를 세상에 두신 것은 빛으로 세상이 무엇이지를 드러내기 위함인데, 그들은 악한 자의 교묘한 유혹에 속함으로써, 세상 체계의 진상을 어둠으로 드러내는 파괴자로 변질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가톨릭교회 사제들의 50-70%이상이 이 이단 신학에 속했다면, 현실은 너무나 심각하다!

 

요한1,5절에서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성경은 우리가 죄를 이겨야한다고 말한 곳은 한 군데도 없으며, 오히려 우리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죄에 관한 하느님의 말씀은 구원만을 말하지만, 세상에 관한 하느님의 말씀은 이김을 말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구원받고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났기 때문에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것은 빛이 흑암을 이기는 것과 같이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는것이다.

 

1요한5,4-5절은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승리의 관건은 항상 우리와 승리자이신 하느님의 아들 사이의 믿음의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

 

요한16,32-33절에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말한다.

이 세상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요한14,30).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고 이기셨다!

그러므로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예수님은 선포하고 계신 것이다.

 

그분의 승리로 말미암아 세상의 임금은 쫓겨났으며, 예수님은 사람을 사로잡아 그분 자신에게 이끌기 시작하셨다.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거듭났고,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때문이다(1요한5,4).

나는 내 주님이 계셨던 바로 그 세상에 있을 수 있으며, 그분이 세상에서 완전히 분별된 것처럼 분별될 수 있는데, 이는 마치 등을 등대 위에 두어 집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게 하는 것과 같다.

 

1요한4,17절에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에라고 말한다.

교회가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세상에서 벗어나거나, 정의구현을 위하여 선과 악의 지식으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 곧 하느님의 빛을 그 가운데 비추는 것을 통해서이다!

하늘은 하느님을 영화(영광)롭게 하는 곳이 아니라 그분을 찬미하는 곳이다!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곳은 바로 이 세상이다!

 

주님!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허락하옵소서!

우리로 깨닫게 하옵소서!

알렐루야! 아멘.

 

전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 을 참고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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