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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21 조회수1,274 추천수1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5월 20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
 
Holy Father,
keep them in your name
that you have given me,
so that they may be one
just as we are one.
(Jn.17,11)
 
 
제1독서 사도 20,28-38
복음 요한 17,11ㄷ-19
 

어느 잡지에서 본 글인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인 것 같아서 옮겨 봅니다.

한 청년이 스승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저는 성공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요?”

스승이 미소 지으며 답했지요.

“세상에는 세 가지의 실패가 있단다.”

성공을 물었는데 실패를 이야기하자 청년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저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에 대해 알고 싶은 걸요.”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알아야 해. 성공은 실패의 변형일 뿐이거든.”

“그럼 세 가지 실패는 무엇인가요?”

“첫 번째 실패는 하기 싫은 일에서 성공하는 것이야. 세속적 대가는 얻었으나 의미와 즐거움을 얻기는 어렵지. 두 번째 실패는 하고 싶은 일에서 실패하는 거야. 계속하면 진정한 성공을 얻을 수 있지. 이때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실험일 뿐이야. 세 번째 실패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 당연히 실패도 성공도 없지. 그러나 인생을 낭비한 책임을 져야 해. 가장 치명적인 실패지. 그렇다면 너는 성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매일 아침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그 일을 찾아라. 그리고 신나게 해라!”

언젠가 어떤 중학생과 대화를 나누다가 ‘장래희망’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없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다시 물었지요.

“학교에서 장래희망 조사하잖아. 그때는 뭐라고 썼니?”

그런데 이번에도 제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학생은 “없다.”라고 쓴다는 것입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다 장래희망을 쓰는데, 너만 ‘없다’라고 쓰면 부끄럽지 않니?”라고 물었지요. 하지만 이번에도 제가 원하는 대답이 아닌 뜻밖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친구들의 대부분도 ‘없다’라고 써요. 한 절반은 장래희망이 없을걸요.”

장래희망이 없다는 것, 결국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요? 시간이 흐르는 대로 대충 대충 살아갈 것이 아니라, 정확한 꿈을 향해 살아가야 합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결승점만을 바라보며 달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성적 1~2점을 올리려는 것보다 꿈을 키워주는 것이 더 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님 역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지요. 그 기도의 내용이 바로 오늘 복음에 등장합니다.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래야 우리 모두가 빠짐없이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꿈을 위해 기도하셨고, 또 이를 위한 행동을 하셨습니다. 바로 주님의 사랑이 가득 닮긴 꿈인 것이지요.

지금 우리의 꿈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주님의 꿈에 함께 동참해보면 어떨까요? 하느님과 하나 되어 구원의 길에 함께 걸어가는 꿈. 이를 위해 더욱 더 주님의 뜻에 맞춰 살아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삶을 윤기 있게 하는 것은 넘치는 만족이 아니라, 소박함, 작은 것에 대한 감사다(다카하시 아유무).


어제 방송녹음 잘 하고 왔습니다. 스튜디오 사진.

 

나를 구하기(‘좋은 생각’ 중에서)

미국 메릴랜드의 의사였던 맥카리스터는 사랑하던 아내가 이름 모를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우울증에 빠졌다. 몸과 마음이 모두 병들자 그는 휠체어에 의지해 지내야 했다. 그뿐 아니라 침대에 눕거나 음식을 먹을 때도 도움을 받아야 했다. 결국 그는 어느 여름날 죽을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그는 며칠 동안 아무 말썽도 부리지 않고 얌전하게 지내면서 간호사들을 안심시켰다.

그런 다음 간호사들에게 날씨도 더운데 해변 벼랑에 올라가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간호사들은 요사이 그의 언행으로 보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를 바닷가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간호사들에게 바닷물에 들어가 수영이나 하고 오라고 했다. 그러자 간호사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를 휠체어에 앉혀 놓고 해변에서 수영을 즐겼다.

그는 사실 간호사들의 눈길이 멀어지면 벼랑에서 뛰어내릴 참이었다. 바로 그때 해변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간호사 한 사람이 발에 쥐가 나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맥카리스터가 주저 없이 휠체어에서 일어나 바다로 뛰어들어 간호사를 구해냈다. 어쩌면 그것은 직업 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 더욱 놀라운 건 그가 바닷속으로 뛰어든 순간, 우울증이 말끔히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간호사를 살렸다기보다 자신을 살린 것이다.

남을 구하려는 마음이 결국 자신을 살렸다는 이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게 됩니다. 아무도 나를 도울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특히 엄청나게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 앞에서 우리들은 너무나도 초라해진 내 자신에 좌절하고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늪에서 나올 수 있는 우일한 방법은 내 자신에게 있음이 아니라, 바로 다른 이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어 하느님의 일을 하도록 해줍니다.


성모성월에 성모님의 희생과 봉헌에 대해 묵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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