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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5.23 토/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이미지 과잉 소비시대에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22 조회수1,169 추천수4 반대(0) 신고



부활 7주 토 요한 21,20-25(15.5.23)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요한21,21)


"The Beloved Disciple"
 
 


  이미지 과잉 소비시대에  

 

오늘의 시대는 이미지 과잉 소비시대이다. 이미지는 실재를 표현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실재보다는 이미지를 앞세우고 이미지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이미지가 ‘악마의 힘’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재와 이미지의 거리는 점점 커져가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인물이라 해도 자본을 이용하여 도덕적이고 청렴한 이미지를 정략적으로 만들어 권력을 창출해가는 것은 이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들뢰즈, 라캉, 맥루언, 보드리야르 등은 이미지와 실재의 관계를 밝히려 했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시대에는 실재보다는 ‘보여지는 이미지’나 ‘보이기 위한 이미지’에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쓴다. 현대인들, 특히 많은 한국인들은 이미지를 과잉 소비하면서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외모 지상주의, 내적 삶의 변화보다는 드러나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이미지 소비시대는 자본의 힘과 결합하여 인격을 자본 아래 두려 한다. 과연 이런 삶이 진정 우리에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가 뒤를 따라오자 베드로가 그분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하고 묻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21,22).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보고 체험했으나 이 대목에서 그는 자신을 빼놓고 다른 이의 문제에 관심을 보인다. 사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수난을 예고하시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가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는 질책을 들었고(마태 16,23), 예수께서 체포되자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세번이나 그분을 모른다고 부인하였다 (26,69-74).

베드로는 주님의 눈에 들기를 좋아하고, 무모한 행동으로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려하고 있다. 이런 태도야말로 매우 미성숙한 태도이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성찰이 없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채 어떻게 보일까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이미지 중심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의식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의 눈길이며,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이지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다. 그에게 우선적이고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니다. 우리가 참으로 부족하고 연약하다 해도 주님께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조건 없이 귀하게 여겨주시며, 당신과 관계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다. 진정으로 내가 행복의 길을 가려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또는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꺼야 한다. 우리가 의식해야 할 분은 하느님뿐이며, 무엇을 하든 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주님의 눈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거기에 매여 있으며, 그런 것들을 의식함으로써 갈등과 번민과 분노가 일어나고 있다면 바로 그 순간 나는 하느님 아닌 것들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다. 그런 삶이야말로 하느님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의 삶이다.

참으로 행복을 원하는가? 행복을 원하거든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남의 눈길을 의식하여 보여지는 이미지를 붙들고 거기에 연연하면 할수록 소유와 물질의 사람, 자기 중심의 사람이 되어 영적인 것으로부터 점점 멀어짐을 명심했으면 한다. 영의 눈이 아니고서는 영이신 주님을 알아볼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나’에 감사하고, 하느님 앞에서의 나의 실재에 만족하는 길 외에 행복으로 가는 길은 없다. 더는 비교하지 말자. 비교는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을 우월감이나 열등감으로 내몰 뿐이다.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바로 나 자신이다.

성 프란치스코가 ‘소유 없이’의 삶을 살면서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여!’라고 기도했던 것은 하느님을 향한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과 영의 시선 때문이었다. 바로 그런 시선과 삶의 방향이 누구보다도 그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나의 존재이유와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신 하느님의 눈길이요 말씀뿐이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길가에 있는 들풀이나 계절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나무들처럼, 우리도 이미지가 아닌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에 감사드리고 스스로를 사랑하며 살아가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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