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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5.24 -- 성령은 하느님 자비의 움직임. (김우성비오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24 조회수681 추천수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령 강림 대축일(2015년 5월 24일)

 

- 성령은 하느님 자비의 움직임. -

 

  움직임은

  ‘살아있음’이라는 존재감(현존감)의 표현이고,

  알 수 없는 생명의 길로

  흘러가게 하고 따르게 합니다.

 

  움직임 자체는 선과 악이라는 인위적 탈을 지니지 않습니다.

  순수 자연의 질서와 조화의 길에 순응합니다.

  심장의 박동에서 숨 쉼 그리고 머리카락 하나하나에서 밤하늘의 별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움직임은 그 자체로 고귀하고 소중하며 전체적입니다.

  자연스런 움직임에 사람의 인위적인 욕심이 개입될 때 움직임은 불안을 불러오고

고통을 따르게 함으로 가식적 인위성을 버리도록 촉구합니다.

양심의 움직임은 항상 하늘의 뜻을 따르라합니다.

  몸 안의 섬세한 움직임을 감지할 때도, 몸 밖의 거대한 움직임을 느낄 때도

모든 움직임은 서로가 긴밀하게 일치하면서 전체진리의 생명을 따릅니다.  

  나이 듦과 병듦도 움직임의 과정이며 전체진리의 뜻이 내포됩니다.

  움직임은 나 자신이 꾸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움직임의 한 순간순간이 하늘의 움직임이며 하늘의 은총이고 섭리입니다.  

  보는 움직임, 듣는 움직임, 느끼는 움직임, 숨 쉼의 움직임, 걷는 움직임,

이 모두가 자연의 움직임이며 자연의 속삭임이며 자연의 생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감사의 신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숨 쉼의 움직임에서 하늘의 움직임을 느끼는 것입니다.  

  가득한 충만함은 바로 나의 존재감입니다.

우주의 움직임이 머무는 존재의 집입니다.

  움직임이 함께하는 동안 하늘의 뜻과 소명, 하늘의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움직임은 나 자신을 채우는 움직임이 아닙니다.

  움직임에 나 자신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움직임은 나의 것과는 전혀 무관한 전체의 뜻이며,

  전체의 움직임을 보입니다.  

 

  복음 선포의 진리는 먼저 움직임의 근원과 뜻을 이해해야합니다.  

  말씀의 진리를 담고 있는 하늘의 움직임에서 복음의 뜻을 느껴야합니다.  

 

  성령은

  하느님 자비의 움직임입니다.

  말씀의 진리를 실어 나르고

  말씀의 진리를 알게 하고

  말씀의 진리 안에 머물게 합니다.

 

  성령은

  믿음의 움직임을 이끕니다.

  하느님 자비의 평화를 보입니다.

 

  성령은

  ‘성령송가’에서 들려주는 것처럼,

  [굳은 마음 풀어주고, 차디찬 맘 데우시고, 빗나간 길 바루소서.

  마음의 빛, 행복의 빛]입니다.  

 

  오늘 복음(요한 20,21-23)에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묵상합니다.

 

  용서는

  하느님 자비의 움직임에 대해

  ‘아멘’의 움직임으로 응답드림입니다.

  용서는

  말씀의 진리를 따름입니다.

  자신 안에 움츠리는 움직임도 자신을 달래는 움직임도 아닙니다.

  ‘나 없음’을 아는 믿음의 따름입니다.

 

  성령의 움직임을 보아야 합니다.

  성령의 움직임을 느껴야 합니다.

  성령의 움직임에 아멘의 믿음을 안겨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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