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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5.27 수/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섬기는 리더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26 조회수1,277 추천수5 반대(0) 신고



연중 8주 수 마르 10,32-45(15.5.27)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3)


The Request of James and John

 

 
 
섬기는 리더  

 

어디를 둘러봐도 ‘힘’이 팽배하다. 특히 오늘날은 자본의 힘이 인간을 도구화하며 물신(物神)으로 삶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종교 세계마저도 수직적 힘의 질서에 젖어, 거부할 수 없는 수평적 관계를 거스르고 있다. 낮추시고 비우시고 죽으신 예수님의 몸짓이나 하찮아 보이는 피조물, 심지어 죽음까지로 형제자매로 받아들였던 성 프란치스코의 형제애가 절실한 때이다.

마르코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 번에 걸쳐 수난을 예고하신다. 첫 번째 예고에서는 제자들의 몰이해가, 두 번째 예고에서는 몰이해뿐만 아니라 묻기조차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세 번째 예고에서는 당신의 운명에 동참하기를 주저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부각되어 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수난을 예고하심에도 동행하기를 꺼려하며 인간적인 영광을 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의 영광에만 집착하여 다른 이들을 지배하려는 제자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는다. 예수님의 영광은 지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바치기까지 사랑하시는 섬김에 있다. 그 길은 고통과 모욕의 길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아버지에 의해서 ‘정해졌다’는 수동형으로 표현되어 있듯이 아버지께서 하실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자발적으로 하느님 뜻에 순응하여 죽음을 향해 나아가신다. 이처럼 수난을 향한 예수의 운명은 고조되어 가는데 제자들은 오히려 수난의 길에 동참하기를 주저하며 더욱더 소극적이고 추종의 결의도 약해져 간다. 이 세 번째 예고에서는 앞의 예고들에 비해 고난당할 예수의 모습이 더 구체적으로 묘사되고(10,33-34), 사람의 아들과 유다 지도자들 및 이방인들의 대립이 두드러진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의 운명예고를 듣고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10,37)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간청한다(10,35-37). 그들은 메시아는 수난을 겪을 수가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겪어야 할 그리스도의 고난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10,38)

예수님께서는 영광에 집착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 영광에 이르는데 따르는 고통과 모욕의 길을 제시한다(10,38-39). 동시에 십자가 죽음에까지 이르는 추종을 다짐하게 하신다. 예수의 말씀 가운데 나오는 ‘잔’이나 ‘세례’는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여 겪게 되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한다(14,36). 예수님의 고난의 잔을 함께 마시며 섬기는 추종에는 영광이 따르기 마련이다(10,4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지배 계급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면서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 그리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10,42-44).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10,45)고 자신의 사명을 밝히신다.

우리도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러 오신 예수의 헌신적인 삶을 모범삼아 그 추종의 길을 철저히 걸어가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고통의 길이라기보다는 섬김의 길이다. 사실상 고통을 받아들이는 힘도 복음의 길로 이끄는 리더십도 사랑의 섬김에서 나온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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