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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28 조회수1,447 추천수1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5월 28일 연중 제8주간 목요일
 
"Master, I want to see."
Jesus told him,
"Go your way; your faith has saved you.". 
(Mk.10,51-52)
 
 
제1독서 집회 42,15-25
복음 마르 10,46ㄴ-52
 

학생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고는 어떤 분이 “다시 10대로 되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저 역시 그 순간에 ‘그래 10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후회할 일도 많이 줄이고, 좀 더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저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옛날의 하기 싫었던 일들이 떠올려졌기 때문입니다. 밤늦게까지 자율학습을 하면서 다시 입시를 준비하며 산다는 것도 끔찍하고, 신학교에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망설이는 시간을 다시 겪어야 하는 것 역시 유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군대를 다시 가야 하는 것도 싫고, 그밖에도 예전에 한 번 체험했던 일들을 다시 겪어야 하는 것 역시 즐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다시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힘들다고 불평불만을 주님께 던졌던 시간들이 상당히 많았지만, 그래도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하신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사의 기도를 바칠 수 있는 이유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불평불만의 말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내 뜻을 내세우려는 교만함에서 나왔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고 말하면서 소경의 이름과 함께 특별히 그의 아버지 이름을 전해 줍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소경의 이름을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할 것 같은데, 왜 그의 이름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 이름까지 말하고 있을까요?

그는 당시에 잘 알려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바르티매오는 큰 영화를 누리다가 몰락한 인물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즉, 집안이 쫄딱 망해 눈이 먼 채 주저앉아 구걸까지 해야 하는 거지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그에게 있어서 어떤 희망이 있었을까요? 아마 처음에는 온갖 불평불만을 간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아무런 응답도 하시지 않았지요. 그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완전히 바닥을 쳤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제 모든 것을 잃은 상태, 이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상태까지 간 뒤에야 그는 온전히 하느님께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상관 없이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체면을 모두 버리고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원했던 대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음이란 겸손의 다른 말은 아닐까 싶습니다. 겸손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다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불평불만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 어디 한둘 입니까?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그르침이 없음을 겸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불평불만보다는 더 큰 영광을 위함임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인 것이고,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주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몸이 굽으면 그림자도 굽으니 어찌 그림자 굽은 것만 한탄할 것인가. 니 이외에는 아무도 내 불행을 치료해 줄 사람이 없다(파스칼).


어제 식당에서 본 재미있는 사진.

 

주님을 알리는 방법

아마 이 실험에 대해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어떤 한 남성 1명이 길모퉁이에 서서 텅 빈 하늘을 60초 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행인들은 이상하게 쳐다보고는 그냥 지나쳤습니다. 다음번에는 5명이 똑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자 길을 가다 멈춰 서서 빈 하늘을 응시한 행인은 이전보다 4배나 많아졌습니다. 이번에는 15명이 서 있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길 가던 사람 가운데 45퍼센트가 멈춰 섰으며, 하늘을 응시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자 무려 80퍼센트가 고개를 올려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이 실험을 생각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주님을 알리는 방법은 단 한 명의 힘만으로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즉, 똑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동조자들이 늘어나는 것처럼,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있어서도 힘을 모아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을 알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냉담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새롭게 교회 문을 찾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나는 안 해도 되겠지?’라는 마음이 아니라, ‘나도 함께 해야지.’라는 마음이 될 때, 주님의 마지막 말씀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제 식당에서 본 재미있는 사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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