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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5.29 금/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일상의 순교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28 조회수1,376 추천수4 반대(0) 신고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루카 9,23-26(15.5.29)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복자 124위
 
 


  일상의 순교  

누구나 죽는다. 살아있는 사람은 원치 않아도 예외 없이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삶이 십자가이고 쉽지 않다보니 남을 돌아볼 겨를 없이 자기 것만 챙기려 하고 자기 문제에만 골몰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닌 것을 자신의 안전과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내놓고 공유하지 않으며 붙들며 살아간다. 한마디로 살고는 싶으나 죽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의미 있을까?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면, 그분 말씀대로 행하며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9,23-24) 하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법을 가르쳐주신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면 먼저 자신을 버려야 한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그저 신체적 생명의 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만 아는 자신, 애착과 소유욕으로 가득 찬 자신, 다른 이들의 아픔에 눈길도 주지 않는 냉정한 마음을 지닌 자신, 세례는 받았으나 하느님을 믿고 따르기보다는 그저 종교행위의 대상으로 여기는 자신, 하느님의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고 주인행세 하는 자신 그런 자신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이런 자기 버림이 바로 일상의 순교이다. 자신에 죽어야 그 안에 주님께서 사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내 안에 사셔야 나는 목숨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역설이다. 이 역설을 사는 것은 유행처럼 일시적인 감정의 표현으로 될 일이 아니다. 세상이 주는 그 어떤 가치에 비할 바 없는 하느님의 존엄함, 그분이야말로 삶의 중심이며 그분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렇게 행동할 때 참으로 살 수 있다.

윤지충을 비롯한 124위 순교자들은 오직 하나의 이유 때문에 자신의 목숨 전부를 내놓았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기 위하여 극도의 고통으로 내모는 형벌을 견디어냈고, 죽음마저도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렇게 십자가를 짐으로써 구원에 이르렀다. 우리는 어떻게 순교의 삶을 살아야 할까? 자신을 버리고, 끊임없이(날마다), 다가오는 일상의 고통과 시련을 견디어내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아가 자신의 고통뿐 아니라 순교는 사회적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순교자들은 자기 개인의 구원만을 위해 순교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순교는 모두를 살리기 위한 순교였다.모두를 생명과 진리에로 이끌기 위한 디딤돌이었다. 우리도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 순교 정신을 ‘함께하는 사랑’으로 표현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살아내야 할 순교이다.

무엇보다도 물신(物神)의 우상들이 판을 치며 인간을 자본의 노예나 도구로 여김으로써 비인간화가 심화되고 있는 이 사회의 고통과 함께 하지 않는 신앙, 그 안에서 희생과 나눔과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는 바로 그곳이 순교를 살아내야 하는 현장이다. 우리 모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자기를 버리고 이제 이 사회와 이웃의 십자가를 힘모아 지도록 하자! 순교는 지나간 과거에 갇힌 이야기도 아니요, 내 현실과 무관한 먼 미래의 일도 아니다.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 안에 계신 예수님의 신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한 우리의 목숨은 살아 있으나 죽은 것이리라!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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