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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29 조회수1,333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5월 29일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My house shall be called a house of prayer for all peoples?
But you have made it a den of thieves.
(Lk.9,24)
 
 
제1독서 지혜 3,1-9
복음 루카 9,23-26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어느 연구소에서 한국 사람들의 행복의 조건이라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수많은 답이 있었지만 제일 많은 답은 ‘건강’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돈’, 세 번째 순위는 ‘사회적 지위’라고 합니다. 어떠세요? 공감하십니까?

그런데 이것들이 정말로 참 행복의 조건이 될 지는 의문입니다. 건강하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지요. 반대로 많은 장애로 힘들어하지만 그 안에서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우리는 많이 목격합니다.

그렇다면 돈은 어떨까요? 부러움을 살 정도로 큰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거액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을 조사한 연구 결과가 있지요. 글쎄 그중의 90% 이상이 얼마 못가서 불행하게 된다고 합니다. 돈 역시 참 행복의 조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지위’는 어떨까요? 과거 사라센 제국의 가장 큰 영화를 누렸던 시기의 왕인 압둘라만 3세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볼 정도의 어마어마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을 때 “내가 행복했던 시간은 고작 14일이었다.”라고 말했다고 하지요. 사회적 지위 역시 참 행복의 조건은 아닌 것입니다.

과거 하느님을 증거하다가 순교하신 분들을 떠올려봅니다. 그들이 순교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저렇게 멀쩡한 사람이 못된 것을 믿어서 죽게 되는구먼.”라고 말하면서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순교자들의 죽음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혹독한 문초를 당해도 자신의 신앙을 버리지 않고, 의연하게 죽음에 맞섰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건강도, 돈도, 사회적 지위도 순교자들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 그래서 죽음의 순간에서도 하느님과 함께 할 모습을 떠올리며 행복하셨던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124위 순교 복자들의 첫 기념일입니다. 작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주례로 열린 시복식을 통해 복자의 반열에 든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날이지요. 바로 우리 신앙의 기초를 닦으신 초기 순교자들이십니다. 이 순교자들을 떠올리면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의 행복은 순간이고, 하늘 나라에서의 행복은 영원이기에 당연히 하느님을 첫 번째 자리에 놓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이 물론 나를 힘들게 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때 어떠한 유혹도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울지 말고 다 함께 기쁘게 기도합시다.”

선행은 작은 것이라도 결코 헛되지 않다(이솝).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

 

모두가 반대해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하라.

아프리카 랑바레네에 병원을 개설한 의사이자, 선교사로 인류애를 펼친 사람으로 잘 알려진 알버트 슈바이처 (Albert Schweitzer)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분의 이름이 역사 안에 기록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하네요. 왜냐하면 그의 가족은 아프리카에 가서 의사로 헌신하겠다는 그의 욕구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를 깨우쳐주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또 실제로 이런 노력에 슈바이처 박사도 많이 흔들렸다고 하지요. ‘신세계 교향곡’으로 유명한 안토닌 드보르자크(Dvo?ák, Antonín)는 그의 아버지가 가업을 물려받아 정육점 주인이 되라고 설득했습니다. 음악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George Fredric Handel)은 그의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한때 변호사가 되려고도 했었습니다. 또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 (Isaac Newton)의 어머니는 그가 가족 농장을 맡아주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역사의 많은 위인들은 주변의 시선과 강요를 따르지 않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굳게 믿었고, 옳다고 생각했던 그 신념을 따랐던 것이지요.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정확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지만, 실패를 하더라도 스스로의 선택을 따를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삶이 아닐까요?


며칠 전에 있었던 경총상생포럼에서의 제 강의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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