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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6-01 조회수1,277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6월 1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This is the heir.
Come, let us kill him,
and the inheritance will be ours.’
(MK.12,7)
 
 
제1독서 토빗 1,3; 2,1ㄴ-8
복음 마르 12,1-12
 

제가 처음 갑곶성지로 부임을 받아 갔을 때였습니다. 성당도 없었기 때문에, 야외 제단에서 매일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키우던 강아지 두 마리가 제대 양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지요. ‘말썽만 부리던 놈들이 왜 그러지?’ 그리고 미사에 참석해서 이 모습을 본 순례객들은 “역시 성지에 사는 강아지라서 다르다.”라고 말하면서 미사 끝난 뒤에 맛있는 것도 많이 주시면서 예뻐하시는 것입니다.

다음 날, 이 강아지들은 또 제대 옆에 복사처럼 앉아있습니다. 이날 역시 사람들은 신기하다면서 또 먹을 것을 주고 예뻐해 주셨지요. 그 뒤로 강아지들은 매 미사 때마다 제대 옆에 앉았고, 미사 후에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아지 중의 한 마리가 미사 도중에 뒤로 가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미사 후에 보니 자기 집에서 잠을 자고 있더군요. ‘이상하다. 어디 아픈가?’ 하면서 무심코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에는 미사 도중에 두 마리 다 뒤로 가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강아지들이 뒤로 가서 순례객들의 가방을 뒤져서 음식을 먹었다는 것을 말이지요. 미사 후에 순례객들이 주는 먹을 것들이 가방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고, 미사 중에는 가방을 지키는 사람이 없음을 알게 된 강아지들은 그때를 틈타 가방을 턴 것이었습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몇 번의 기회를 주었지만, 계속 가방 털이를 해서 결국 순례객들의 가방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미사 중에는 창살로 만들어진 우리 안에 가둬두게 되었습니다. 미사 시간만 참으면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또 많이 먹고 싶다는 욕심이 결국 처음보다도 못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이 강아지들을 떠올리면서 우리 인간 역시 다를 바가 없음을 많이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의 삶을 길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하늘 나라의 영원한 시간을 생각한다면 찰나의 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시간이지요. 주님께서는 이 시간을 잘 참으며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간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어떠합니까? 욕심과 이기심을 내세워서 하느님 뜻에 더욱 더 멀어질 뿐입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못된 종들처럼 말이지요.

그 못된 소작인들 역시 처음에는 주인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일구어 만든 포도밭을 만들고는 소작인들에게 맡기고 멀리 떠났겠지요. 소작인들이 만든 포도밭이 아닌 주인이 직접 일구어 만든 포도밭이니 얼마나 정이 많이 들어갔을까요? 따라서 웬만큼 믿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맡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작인들이 배신을 합니다. 바로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포도밭을 통째로 집어 삼키겠다는 욕심이었지요.

결국 자신의 뜻대로 되었습니까?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순간의 만족, 나만의 이익을 위한 이기심과 욕심을 채우려고만 한다면 주님의 사랑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욕심을 조금만 줄여나가고 주님께 겸손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만 있다면, 처음에 누리던 그 모든 것을 포함해서 더 많은 것들을 얻고 누릴 수 있습니다.

겸손을 배우려 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O.메러디드).


어제 특강을 한 제주도의 모슬포성당입니다.

 

기도

네덜란드의 코리 텐 붐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그의 나이 50세 때에 나치를 피해 도망 온 유태인을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여동생과 함께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과 고통스러운 노동 속에서 여동생이 죽고 말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일상의 삶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자신의 사랑하는 여동생을 죽게 만들었던 기억들이 그를 너무나도 힘들게 만들었지요. 그러던 그가 위로를 받은 곳은 바로 신앙을 통해서였습니다. 하느님의 용서를 알게 되었고, 자기 역시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수용소에서 자기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간수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수용소에서의 악몽 그리고 죽은 동생이 떠올려지면서 도저히 간수였던 이 사람을 용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순간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저는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용서하는 마음을 저에게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면서 그는 전율을 느낄 수가 있었고, 자신의 마음 안에 사랑이 용솟음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에게 웃으면서 악수를 청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 그러한 기도가 나의 욕심을 채우는 기도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모슬포 성당의 사랑의 집. 1954년에 중공군들이 지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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