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탐구 생활 (67) 축복과 축성 지난주에 설명했던 ‘강복’과 ‘축복’이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복(베네딕시오)을 우리말 어법에 맞춰 둘로 나눈 것이라면, 오늘 말씀드릴 ‘축복’과 ‘축성’은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전례 행위입니다. ‘축성’은 성사나 준성사의 일종으로 사람이나 물건을 하느님께 바쳐 거룩하게 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축성과 축복으로 사람이나 물건이 세속의 일반적인 상태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도구가 되거나 하느님의 보호에 맡겨지는 새로운 상태가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복을 베풀어주시기를 기원하는, 또는 그렇게 받는 복인 ‘축복’과는 달리, ‘축성’은 하느님께 흠숭을 드릴 목적으로 사람이나 사물을 완전히 봉헌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것을 ‘축성한다’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하는 것은 성찬례에서 빵과 포도주가 사제의 축성(감사 기도)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성체성사에서 다른 모든 성사의 힘이 파생되듯이, 성찬례의 빵과 포도주 축성에서 다른 모든 축성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나옵니다. 그 밖에도 사제나 주교, 부제 서품 때, 축성 성유를 거룩하게 할 때, 종신 서원, 동정녀 봉헌, 성당과 제대 봉헌 때 축성합니다. 축복과 축성을 구별하는 가장 간단한 표지는 축성 성유의 사용입니다. 축성 성유가 발라진 사람이나 사물은 하느님께 바치는 영구적인 봉헌의 표지를 받는 것입니다. 세례 예식 때 사제는 물로 세례를 베푼 뒤 새 신자의 이마에 축성 성유를 바릅니다. 견진성사 때 주교는 견진자의 머리에 오른손으로 안수하면서 그 엄지손가락으로는 이마에 축성 성유를 발라줍니다. 서품 예식 때 주교는 거룩한 직무 수행을 위해 바쳐진 수품자의 손에 축성 성유를 바릅니다. 성당과 제대 봉헌 예식 때는 성당 벽과 제대 상판에 축성 성유를 발라 거룩하게 합니다. 다만, 임시 성당이나 이동식 제대는 축성하지 않고 축복합니다.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종신 서원이나 동정녀 봉헌 예식도 축성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축성 성유를 바르지는 않습니다. 서원한 수도자나 동정녀는 하느님과 교회 앞에서 자유로이 표명하는 서원으로 축성 생활을 시작하게 되나, 퇴회 또는 제명조치 되는 경우 서원과 선서에서 생긴 모든 권리와 의무도 자동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축성 성유를 사용하는 세례, 견진, 서품 예식과 달리 어떤 영구적인 봉헌의 표지를 예식 안에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봉헌했고 하느님께서 그것을 받아주셨지만, 자의든 타의든 그 생활을 지속할 수 없을 때는 새로운 생활로 다시 하느님과 합당한 관계를 맺는 데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습니다. 이렇게 축성이 의미하는 바를 축성 성유가 잘 나타내 주기 때문에 축성 성유 자체도 축성합니다. 성주간 목요일 성유 축성 미사 때 일 년 동안 교회 예식 때 쓸 세 개의 기름을 거룩하게 하는데, 예비 신자 성유와 병자 성유는 축복하고 축성 성유만 축성합니다. 축성의 주요 도구가 축성 성유라면 축복의 주요 도구는 성수입니다. 이 둘의 물질적인 차이만 보아도 의미의 무게가 가늠이 됩니다. 무색무취의 물로 된 성수는 뿌린 다음 금방 마르는 반면, (올리브) 기름과 (발삼) 향료로 이루어진 성유는 스며들어 오래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남깁니다. 그래서 축복은 여러 번 되풀이할 수 있지만, 축성으로 들여 높여진 사람이나 사물의 새로운 상태는 영구적인 것이어서 축성은 원칙적으로 되풀이할 수 없습니다. [2021년 11월 14일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서귀복자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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