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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6..3『전례력에 따른 렉시오 오늘의 묵상』-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아오스딩수사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6-03 조회수565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6월 3일(마르 12,18-27):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마르 12,24) |       


* 맥락(context)과 본문(text) 읽기: 마르 12,18-27

  

  맥락(context)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자, 적대하는 이들이 서로 타협하여 동원되고 있습니다. 앞의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논쟁(11,27-33)에서는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세금에 대한 논쟁(12,13-17)에서는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이, 오늘 복음인 부활에 대한 논쟁(12,18-27)에서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을 대적하여 등장합니다.

   그리고 앞의 세금에 대한 논쟁이 정치적 문제였다면, 오늘 복음의 부활에 대한 논쟁은 신학적인 문제의 제기입니다.

   본문(text)의 앞부분(18-23)에서,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들은 이미 부활을 예고(8,31)한 예수님께 자신들의 성경지식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도전해옵니다.

   본문의 뒷부분(24-27)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로 그들을 반박합니다. 하나는 부활 후의 세계는 시집가도 장가드는 세계가 아니라 천사들과 같아진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느님이 산 이들의 하느님이라는 성경(탈출 3,6)을 근거로 부활의 사실성을 증명합니다. 곧 그들의 성경에 대한 무지와 하느님 능력에 대한 영적무지를 지적하십니다.

   오늘 <복음>믿는다는 것믿지 않는다는 것의 차이를 잘 드러내줍니다. 곧 불신의 페러다임과 믿음의 페러다임의 차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사두가이들의 영적무지와 예수님의 신적지혜가 대조를 이루면서, 영적무지로 인한 구속과 속박을, 신적지혜로 인한 자유와 해방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믿음에 달려 있음을 말해줍니다.

 

* 묵상(meditatio):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마르 12,24)

 

   그렇습니다. 이러한 영적 존재에 대한 무지와 하느님 권능에 대한 불신이 그들로 하여금 부활에 대한 믿음의 거부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결국은 성경을 몰랐기에, 또한 불신했기에 영적 무지에 빠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마치 저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나는 오늘도 성경을 얼마나 읽는가? 그리고 읽되, 믿는가?

그리하여 나에게는 영적무지가 아닌 신적지혜가 열려 있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내가 바로 사두가이가 아닐까?

현대판 사두가이란 누구인가?”

성경의 가치관이 아닌 왜곡된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갇혀있는 사람,

그래서 자신이 아는 것 이상의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자신과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사람,

그래서 초월적인 것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

오직 보이고 들리는 것, 검증되는 것, 감각적인 것 등만 받아들이는 사람, 그래서 보이지 않는 근본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바로 내가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는가?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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