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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4.『 렉시오 오늘의 묵상』-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아오스딩수사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6-04 조회수575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문맥(context)과 본문(text)읽기: 마르 12, 28-34

   정치적(세금논쟁), 신학적(부활논쟁)에 이어, 이제 율법학자는 율법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곧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질문하는 마태복음의 병행구절과는 달리, 마르코복음에서는 적의를 품고 있지 않으며, 진지하고 객관적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도 대립적이지 않습니다.

   율법학자는 자신이 율법의 전문가였지만,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모든 계명 가운데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곧 율법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한 분이신 주 하느님에 대한 사랑네 이웃에 대한 사랑을 모든 계명들의 근본원리로 제시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통하여, 한편으로는 당신의 가르침이 율법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연장선상에서 그것을 완성하고 성취시키는 것임을 밝혀주시고, 또 한편으로는 당시의 유대인들이 예배를 위한 형식에는 철저하면서도 정작 사랑을 나누어야할 이웃을 배제시키고 있음에 대해서, 율법의 본질과 지향하는 바를 실천하도록 제시하십니다.

* 묵상(meditatio):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

   이는 근본적으로 이웃이라고 보지 않는 관점입니다. 한 아버지안에 있는 한 형제 한 자매라는 관점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에페 1,10; 1고린 1,30 참조)일 뿐, 이란 애시 당초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는 이웃내 몸처럼사랑하게 됨을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나는 형제를 내 몸처럼 사랑하고 있는가? 진정, 나에게 있어 형제가 곧 나 자신이 되어 있는가? 그래서 형제의 아픔이 바로 나 자신의 아픔이 되는가?

그러고 보니, 저는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저는 아직 제 형제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형제들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삼고 있지 못하니 말입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는 저에게 새로운 관점을 요구합니다. 새로운 변혁, 새로운 틀의 패러다임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나 자신 살도록 요구합니다. 곧 타인인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인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요, 타인인 형제가 아니라 하느님인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형제를 내 몸같이”, “내 형제를 하느님 같이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사랑의 소명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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