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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6-14 조회수1,665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6월 14일 연중 제11주일
 
"To what shall we compare the kingdom of God,
or what parable can we use for it?
It is like a mustard seed that, when it is sown in the ground,
is the smallest of all the seeds on the earth.
But once it is sown, it springs up and becomes the largest of plants
and puts forth large branches,
so that the birds of the sky can dwell in its shade."
(Mk.4,30-32)
 
 
제1독서 에제 17,22-24
제2독서 2코린 5,6-10
복음 마르 4,26-34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문득 처음 타자를 배울 때가 떠올려졌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컴퓨터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기였지요. 그래서 과제 리포트를 제출하기 위해 대부분 손으로 직접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선배들이 4벌식 수동타자기를 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릅니다. 손으로 쓰는 삐뚤삐뚤한 글이 아닌, 타자기를 통해 나온 잘 정렬된 원고는 내용을 떠나서 너무나도 훌륭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타자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자판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엄지와 검지만을 이용했던 독수리 타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열손가락을 모두 사용하다보니 타자 속도는 점점 빨라졌지요. 한때 1분에 800타 이상을 치기도 했었지요.

사실 이런 저의 모습을 상상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손으로 쓰는 것이 정상이고, 타자를 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또한 독수리 타법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어느 순간에 자판을 보지 않고서도 타자가 가능해졌습니다. 한글만 자판을 보지 않고 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영문 역시 보지 않고도 얼마든지 타자가 가능합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정말로 많은 글을 썼습니다. 2001년부터 써온 새벽 묵상 글이 A4용지로 9,000페이지가 넘으니, 이전에 썼던 글까지 생각하면 얼마나 많이 타자를 쳤겠습니까? 그러다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해져서 자판을 보지 않고도 빠른 타자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습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당연한 모습이 된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런 만화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한 갓난아이가 넘어집니다. 그런데 말풍선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제 1,999번 남았다.”

아이들이 일어서서 걷기 위해서는 2,000번을 넘어져야 한다고 하지요. 그 아이는 그 2,000번 중에서 첫 번째 넘어짐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1,999번 남았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것, 자주 넘어져서 포기하고 싶고 또 불가능한 일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계속 넘어져야 비로소 잘 걸을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땅에 뿌린 씨에 대해서 그리고 겨자씨에 대한 말씀을 해주십니다. 씨가 어떻게 자라는지는 잘 모르지만 저절로 자라 열매를 맺게 되어 수확을 하게 된다고 하시지요. 또한 너무나도 작은 겨자씨가 자라나 하늘의 새들이 깃들일 정도로 큰 나무로 변화된다고 하십니다.

이 모습이 하느님 나라와 같다고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어떻게 들어가는지는 잘 모르지만, 하느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그 사랑을 굳게 믿고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생활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풍성한 열매를 맺고, 큰 나무로 변화되어 하느님 나라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한계 짓지 마십시오. 스스로 할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대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믿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하느님 나라는 더욱 더 내게 가까이에 있을 것입니다.

경험은 사람들이 실수에 붙이는 이름이다(오스카 와일드).


1999번 남았습니다. 실망하지 않습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납시다.

어떤 분과 함께 차를 타고 어느 곳을 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외곽의 한적한 도로에 접어들었는데, 바로 앞 차가 너무 속도를 줄여서 가는 것입니다. 왕복 2차선이었기 때문에 추월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요. 운전을 하시는 분이 “저 차 운전자는 분명히 아줌마일거야. 아줌마, 속도 좀 내세요.”라고 말합니다. 잠시 뒤에 차선이 왕복 4차선이 되는 순간, 얼른 추월을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모두 앞 차의 운전자가 누군지 보았습니다. 과연 운전자가 아주머니였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운전자는 아주 젊은 남자 청년이었습니다.

운전이 익숙하지 않으면 ‘여자’라는 생각. 분명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서 정말로 운전을 잘 하는 분이 계신데, 그분 역시 ‘여자’입니다. 바로 고정관념인 것이지요.

이런 식의 고정관념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려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내 사고의 폭을 좁게 만드는 고정관념. 이 고정관념을 없애고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제 오늘 특강을 하는 청라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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