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루카12,49-50)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06-15 조회수901 추천수2 반대(0) 신고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루카12,49-50)

            (하느님은 우리의 내면적인 생명의 변화를 갈망하신다!)

  

       * 이 묵상은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의 글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부류가 있다. 한 부류는 타락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조금도 그리스도인 같지 않으며 행동과 사람됨이 불신자와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은 타락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한 부류의 그리스도인은 규율을 잘 지키는 사람들로 이전에는 자기 마음대로 살았으나 지금은 단정하며 선을 행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사람의 안목에서 볼 때 수준이상의 그리스도인이겠으나, 하느님의 눈에는 여전히 수준이하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타락한 그리스도인도, 또한 수준이상의 그리스도인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죄악을 떠나는 것뿐만 아니라 더욱이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서부터 살아내는 것이다!

이것은 선악의 문제도, 좋고 나쁨의 문제도 아니며, 도덕 윤리적인 문제도 아닌,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서부터 살아내느냐의 문제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 모두는 구원받아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생명이 되셨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지금 내 안에 내가 사는가? 아니면 하느님께서 사시는가? 라는 말이다!

다른 말로, 우리는 우리를 살아내는가? 아니면 하느님을 살아내는가?

이 문제의 핵심은 우리의 타고난 존재가 파쇄(부서지고 갈라지고 찢겨져 죽음에 이름)되길 원하는가 원치 않는가, 곧 십자가의 죽음을 거치길 원하는가 아니면 원치 않는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소망하고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외면적인 행위의 개선뿐만 아니라, 더욱이 우리 내면적인 생명의 변화이며 기질의 파쇄이다!

행위의 개선은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할 뿐 결코 영적인 사람이 되게 할 수는 없다!

영에 속한 사람이 되려면 안에서 파쇄를 거쳐야 한다는 말이다!

내면의 파쇄를 거치지 않고, 타격을 받지 않고, 죽음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도덕 윤리적인 사람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생명이 충만한 영적인 사람은 될 수가 없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훨씬 더 높은 것이다!

만일 우리가 파쇄되기를 원치 않고 죽음을 거치기를 원치 않는다면, 하느님을 살아낼 방법이 없다!

만일 우리가 파쇄되고 죽기를 원한다면, 하느님을 우리 몸에서 살아낼 수 있다!

성경 안에서 말하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바로 죽음을 거치는 것이고 십자가의 파쇄를 통과하는 것이다.

 

루카12,50절에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는 뜻은 그분의 죽음이 구속의 성취를 위한 통과해야할 하느님의 정하신 방법이며, 밀알의 죽음, 곧 파쇄가 그 안에 있는 생명을 해방하는 유일한 길임을 지적하신 말씀이다(요한12,24).

 

루카12,49절에서 우리 주님은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으랴?”고 말씀하셨다. 49절의 불은 하느님의 생명, 곧 그리스도의 생명을 대표한다. 또한 50절의 세례는 십자가의 죽음을 말한다. 그분의 부활의 때로부터 이 불이 이 땅에 타오르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의 감추어졌던 영광이 육신의 죽음의 파쇄로 해방되었을 때, 신성한 불이 땅에 던져져 온 땅을 태우고 있다.

이 불은 신성한 생명의 불인데, 그분은 인간 껍질 안에 싸여 있고, 가두어져 있고, 갇혀 있었다. 그분은 인간 껍질에 의해 속박당하셨다!

 

곧 한 면에서는 우리를 대신한 십자가의 속죄를, 또 한 면에서는 신성한 생명의 해방을 말한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로 겉사람이 파쇄 되어야만 우리 속에 있는 생명이 흘러 나갈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 주 영이 되신 것은 바로 우리의 변화를 위해서이다(2코린3,18)!

그분은 신성한 생명주시는 영으로 신성한 생명과 본성을 우리 영 안에 분배하신 후 그분은 주 영이 되시어 우리의 타고난 혼을 변화시키신다!

(이 부분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http://cafe.daum.net/yoondaniel 영적 성장과 영적인 사람'을 독서하시기를!)

 

그러므로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주님은 육체가 되셔서 그분께서 입으신 육체 안에서 억압받으셨다. 신성한 생명을 지니신 무한하시고 신성하신 분께서 그분의 육체에서 해방되시기 위해, 그분은 육체의 죽음을 겪으심으로 세례를 받으셔야 했다.

 

그분의 신성한 생명은 그분의 육체의 죽음을 통하여 해방된 후에, 부활 안에서 믿는이들의 영적 생명의 충격력이 되신 것이다!

이 충격력, 곧 추진력이 주님의 해방된 신성한 생명에서 오며, 하느님의 나라와 사탄의 왕국인 이 세상 사이의 갈등과 분쟁과 분열의 원인이 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다른 말로 표현해보자.

어떤 사람이 구원받았을 때 하느님은 그 사람의 영 안에 들어간다. 이것이 바로 주 예수님이 그 사람 안에 태어나셔서, 그에게 예수님의 탄생의 체험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날 때마다 구원받은 사람 안에 구금되는 어려움에 처한다!

 

그분은 나사렛 사람으로 태어나셨다. 그러나 이 나사렛 사람이 바로 그분의 어려움이 되었고, 그분을 가두었다.

이 가둠은 십자가의 파쇄를 필요로 하였고, 십자가의 갈라짐을 필요로 하였다.

십자가로 그분의 몸에 타격을 가했을 때, 그분은 파쇄 되었고, 갈라졌으며, 생명이 그분 안에서부터 해방되었다!

그 생명이 베드로 안에 들어왔고, 요한 안에 들어왔으며, 당신과 내 안에도 들어왔다!

그러나 그분은 또다시 동일한 어려움과 속박을 겪게 되었다.

곧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태어났다고는 증언할 수 있으나,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 몸에서 살아내고 해방함으로서 성령의 통로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오늘날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그리스도인에게서 파쇄된 부분이 없고, 상처가 없고, 우리 몸에 죽음의 인과 십자가의 체험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은 사실이나, 이 생명이 흘러나가 생수의 강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생명의 성장은 그 사람 자신의 변화에 있지 않고, 이 사람이 파쇄되어 그리스도의 분량이 증가되는 것에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분량이 자라는 것은 사람의 파쇄와 그리스도의 증가됨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 유용한 그릇 중 원래 그대로 온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몸에 상처와 파쇄된 부분을 가지고 있다!

어떤 믿는이는 주님을 믿은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 몸에 파쇄된 부분이 한군데도 없다. 그의 삶 중에 만난 환경은 줄곧 순조로운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복이 많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참되게 하느님의 손 안에 있는 사람은 많은 때 하느님께서 그의 몸에 파쇄의 역사를 하시며, 타격을 주고 갈라지게 하는 역사를 하신다!

하느님께 가장 열납 받은 나사렛 사람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항상 고통을 당하셨다. 우리 주 예수님 그분은 슬픔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갖고 계셨고, 그 분의 몸에는 압박과 상처가 가득하였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손 안에 있고, 그분이 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의 몸에는 반드시 많은 파쇄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하신 결과이다!

어떠한 일을 하시는가?

바로 파쇄, 곧 그의 옛사람이 부서지고 갈라지고 찢겨져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만일 우리를 쓰시고자 한다면, 그분의 손은 우리 몸에서 다방면의 역사를 하실 것이며, 이로 인해 우리의 몸에 많은 상처와 파쇄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 상처와 찢겨짐은 생수가 흘러나갈 수 있는 출구가 된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순탄한 데에 있지 않고 순탄치 않는 데 있으며, 뜻대로 되는 데 있지 않고 역경에 있다. 또한 당신이 벗어날 수 없는 환경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난다!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십자가의 파쇄를 체험하고 그 배에서 생수를 흘러 보내는 사역자가 없다는 것과 고착된 교리와 생명이 없는 외적인 의식 중심의 예배와 성직자 위주의 잘못된 계급주의로 평신도의 사역이 극도로 위축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갈망은 오직 하나! 그것은 십자가의 파쇄를 체험한 그리스도인이다!

왜냐하면, 그를 통하여 하느님은 진정 일하시고, 그로 인하여 교회가 진정 건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렐루야!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