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탐구 생활 (68) 기다림의 색깔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을 늦게까지 기다렸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적어도 한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연인이라면 기다리는 시간마저 달콤했을 것이고, 비즈니스 상대라면 초조함이 앞섰을 것입니다.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의 처리 과정이었다면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았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이렇게 기다림은 만남의 종류에 따라, 또 기다리는 사람이나 대상에 따라 사뭇 다른 느낌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일은 어떨까요? 대림 시기는 처음에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성탄)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출발했습니다. 주님의 성탄과 그분께서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신 사건들을 기억하는 것은 파스카 축제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기념인 만큼, 이 중요한 시기를 준비하는 또 다른 기간이 생겨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다가 중세 초기 갈리아 지역(대략 오늘날의 프랑스 지방)에서는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종말)을 기다리며, 대림 시기를 마지막 심판에 대비한 속죄 기간으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대영광송, 사은 찬미가 등 축제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는 예식 요소를 삭제하고, 제의도 사순 시기와 마찬가지로 자색 제의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12세기에는 이러한 속죄의 성격과 종말론적 기다림의 요소들이 로마 전례에도 스며들었고, 그때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대림 시기는 오랫동안 ‘또 하나의 사순 시기’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면서도 부활하신 주님 현존의 기쁨을 나타내는 환호인 알렐루야는 그대로 유지하여, 사순 시기의 참회 고행과는 그 성격이 다름을 은연중에 알려 주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개정된 로마 전례에서 대림 시기는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두 가지 성격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들에게 처음 오셨음을 기념하는 주님 성탄 대축일을 준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기념을 통하여 시간이 끝날 때 두 번째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이끄는 때이다”(「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39항). 그러면서 교회는 신자들에게 대림 시기 동안 예수님의 오심을 열심히 그리고 기쁘게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전례 색깔은 여전히 사순 시기와 같은 자색이지만, 사순 시기와는 조금 다른 태도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사순 시기의 자색이 우리에게 흥청망청 살아온 시간을 뒤로 하고 이제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 딱 필요한 만큼의 소박하고 검소한 옷차림을 할 것을 요구한다면, 대림 시기의 자색은 소중한 사람을 만나러 갈 때 한껏 멋을 내지만 신경 썼다는 티를 내면 촌스러우니까 맨 마지막에 걸친 장식 하나만 덜어내라고 충고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순 시기의 자색을 보면 고개 숙인 ‘절제’가, 대림 시기의 자색을 보면 두근대는 ‘설렘’이 떠오릅니다. 그 때문인지 독자적인 전례를 거행하는 이탈리아 밀라노 교구에서는 대림 시기 전례색으로 희망을 나타내는 녹색을 사용합니다. 주님께서 언제 어떤 모양으로 다시 오실지 알 수 없지만, 첫 번째 오셨을 때 꼭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신 그분의 약속 하나를 믿고 교회는 오늘도 그분을 기다립니다. 우리의 다른 모든 기다림도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신뢰로 말미암아 기록해졌으면 좋겠습니다. ※ 「전례 탐구 생활」 연재를 마칩니다. 지난 2년 동안 부족한 글 읽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1년 11월 21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서귀복자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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