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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복음묵상 (부유함과 가난)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5-06-19 조회수739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교황님복음묵상

2015년 6월 16일[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제1독서: 코린토 2서 8,1-9

화답송 : 시편 146(145),2.5-6ㄱㄴ.6ㄷ-7.8-9ㄱ(◎ 1ㄴ)

복음: 마태오 복음 5,43-48

http://www.news.va/en/news/mass-at-santa-marta-wealth-and-poverty 

부유함과 가난

 6월 16일 목요일 Santa Marta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강론의 핵심은

“가난함의 신학”이었습니다.

교황의 묵상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8,1-9)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에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모금을 하고 있었고

가난 속에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모금이 잘못된 방법으로 이루어 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도 바오로는 “몇 가지 고려할 사항들,

일종의 가난함의 신학”을 제안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은 항상 힘들게 하는

 말이기 때문에 명료히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이런 말을 얼마나 자주 들었습니까.

“이 사제는 가난에 대해 너무 많이 말해.

이 주교는 빈곤에 대해 말하고 이 그리스도인은

또는 이 수녀는 가난에 대해 말해……

그들은 공산주의자 같아, 그렇지 않아?”

하지만 오히려 “가난은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에서 가난을 빼 버리면

예수님의 복음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교황은 강조했습니다.

그리하여 바오로 사도는 마케도니아 교회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자선과 가난과 부유함”에

 대한 교리를 설명합니다. 그곳에서

 “혹독한 고통의 시험 속에 ― 왜냐하면

그들은 박해로 큰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

그들에게는 풍요로운 기쁨과 극단적인

빈곤이 있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줄 때, 고통을 견디어 낼 때 그들은 부유했고

 그들은 기쁨에 넘쳤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것은 참행복 중

 한가지로 보인다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

[…]면, 너희는 행복하다.”

이 예를 들은 후에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의 교회로 돌아가 말합니다.

“여러분은 부유하니 예루살렘교회,

그들을 생각하십시오.”

그러나 교황은 바오로 사도가

 어떤 부유함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그 답은 바로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이제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곧 믿음과

말과 지식과 온갖 열성에서

 (우리가 여러분에게 가르친)

우리의 사랑을 받는 일에서도 뛰어나므로”.

그 다음에 한 가지 권고가 뒤따라 나옵니다.

“자, 여러분은 뛰어 나므로 이 은혜로운

일에서도 뛰어나도록 마음을 쓰십시오.

즉, 당신이 받은 은혜로운 부유함

―열정, 자선,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지식―이

 당신의 주머니에 이르게 하십시오.

왜냐하면 믿음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기억해야 할 황금률입니다.“

 교황은 이렇게 설명했고 덧붙였습니다.

 “그리하여 바오로 사도의 말에는

부유함과 가난이 나란히 나옵니다.

예루살렘의 교회는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 말씀이라는 보물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부유합니다.

코린토 교회를 복음 말씀으로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 이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그들은 복음 말씀이라는

보물을 주었습니다.

실제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은

복음 말씀을 갖지 못해 가난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했습니다.

 “여기에 상호 교환이 있습니다.

즉, 가난에서 부유함이 나옵니다.”

교황은 설명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바오로 사도가 묵상을 통해

다다른, 우리가 ‘가난함의 신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기본 원리이며 가난이 왜

복음의 핵심인지에 관한 기본 원리입니다.

이 서한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바로 사람 되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구원과 말씀과 은총의 은사 안에서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려고 스스로

겸손하시며 이렇게 자신을 낮추시며

스스로 가난하게 되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난함의 신학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첫 번째 참행복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당신 자신을 그리스도의

가난으로 부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것이 아닌 다른 부유함을 원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일입니다.

그것은 단지 가난하게 되는 것만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나를 부유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일상 생활의 구체적인 본질로 돌아가

 이야기를 하면서 교황은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때,

 우리는 그리스도적인 방식으로 자선 실천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선한’ 행동이고 ‘인도적인’ 행동이지만

바오로 사도가 원하고 또 가르쳤던

그리스도인의 가난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가난은

 “내가 나 나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는 것이지

남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조차도 내어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나를 부유하게

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나를 부유하게 해 줍니까?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가난한 사람들 속에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서한을 쓰면서 같은 생각을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 납니다.

“가난한 사람과 가난한 공동체,

모든 것이 부족한 너무나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서

나는 여분의 것이

아닌 것을 매번 포기합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나를 부유하게’ 해 주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것은 가난이

 “이데올로기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결론 지었습니다.

가난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가난함의 신학” 안에서 우리는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려고

 자기 자신을 낮추시고 겸손하시며

스스로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발견합니다.

그리하여 “첫 번째 참행복―‘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황은 이어서 말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은, 성체의 희생으로

‘우리를 위해 빵’이 되시기까지 그토록 스스로

 겸손하신 주님의 이 길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역사 안에서, 그분 치욕의 기억 안에서,

그분의 가난과 이 ‘빵’을 기념하며 예수님께서는

 끊임 없이 당신 자신을 낮추십니다.

 우리를 부유하게 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고 나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가난을 알도록

해 주시기를.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때에

갖추어야 하는 자세를 알도록 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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