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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십자가의 파쇄가 있을 때만 생명의 출구가 있다! (2코린12,9)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06-19 조회수732 추천수1 반대(2) 신고

십자가의 파쇄가 있을 때만 생명의 출구가 있다! (2코린12,9)

                (주님은 생수의 강물이 되는 파쇄된 사람을 필요로 하신다!)

 

* 이 묵상은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의 글이다.

 

 

2코린12,9-10절에 바오로는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온전히 드러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바오로의 몸에 있는 가시가 그를 떠나게 해 달라고 세 번 주님께 간구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주님은 그의 간구에 응답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가시를 그의 몸에 남겨 놓으셨다. 주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바오로가 주님의 넉넉한 은총을 체험하도록 하고, 아울러 바오로라는 사람이 파쇄(옛사람이 부서지고 갈라지고 찢겨져 마침내 죽음에 이름) 되어야 함을 알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님의 뜻은 만일 바오로의 몸에 가시가 없다면, 그가 상처받거나 어려움을 당할 때 그리스도가 그에게서 흘러나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데 있다!

아마도 우리는 고난 받기를 두려워할 것이다. 사실은 고난 받지 않으려고 교회에 나간다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십자가가 생명의 유일한 출구라는 것을 잊지 말라!

 

십자가는 주님의 생명의 출구이다. 십자가의 파쇄가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출로가 있다. 파쇄된 사람에게서만 주님의 생명이 흘러나올 수 있다!

꾀나 오래전 내가 말레이시아를 여행했을 때, 그곳에서 나는 고무나무를 처음 보았고, 고무나무에 흠집을 내고 비닐호스를 꼽아 놓고 고무나무를 경작하는 수많은 농장에 놀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의 농부들이 말하기를 고무를 고무나무 안에서 흘러나오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고무나무에 흠집을 내고 자르는 것이고, 그 흠집을 크게 낼수록 더 많이 흘러나온다는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먼저 파쇄와 갈라짐이 있어야 그리스도의 본질과 생명이 그 갈라진 곳에서 흘러나올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좋은 비유이다. 그러므로 많은 경우 고난과 역경과 핍박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몸에서 부딪치게 되는 어려움은 세상과 죄악이 아니며, 인정도 아닌 타고난 천연적인 것임을 보게 된다. 죄악, 세상, 인정 이러한 것들은 방해하는 요소들이지만 벗을 수 있는 옷과 같이 어쩌면 매우 작은 방해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안에는 주관적인 어려움이 있는데, 이 주관적인 어려움은 바로 우리의 자아이며, 우리의 타고난 생명인 옛사람이다. 이것은 반드시 십자가의 파쇄가 필요하다!

 

1코린2,2절에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바오로가 알고자 한 것은 두 면이 있었는데, 한 면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다른 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못 박히심이다.

 

바오로에게 있어서, 단지 그리스도만 있고 십자가가 없다면 전파할 것이 없다.

십자가가 우리 몸에서 파쇄한 것이 어느 정도일 때, 그리스도의 흘러나감도 그 정도이며, 십자가가 우리 몸에서 역사한 것이 얼마일 때, 그리스도의 표현도 그 정도이다!

우리 옛사람은 그리스도의 원수이고 하나님의 방해물이기에 십자가로 처리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구원은 받았지만, 우리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나오지 못할 수 있다!

그리스도가 흘러나올 수 없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어려움은 다른 사람에게 있지 않고 바로 당신과 나에게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가 이 이상을 볼 수 있기를 간구한다!

이 이상은 두 면이 있고 두 중점이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십자가의 파쇄이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죄악을 제거하고 세상을 벗고 좋은 일을 하고 선행을 행하면 좋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목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서 충분히 흘러나오도록 우리가 파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바오로가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을 알고자 한 이유이다!

 

십자가는 우리 몸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출구를 찾아야 한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았고 또한 매우 열심이며, 죄와 세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영적인 상태는 진전되지 않았고, 주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출구를 얻지 못하신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 안의 우리들의 모습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우리의 열심, 죄악을 처리함, 세상을 벗어남이 전부가 아니다!

주님께서 우리 몸에서 출구를 가지셔야 한다!

 

우리에게 있어 그리스도를 가장 크게 방해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설령 우리의 복음 전파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성직자와 수도자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신학자나 교회내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그리스도가 어느 정도 출구를 얻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절대로 없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하나의 출구를 가지려면 우리의 자아가 십자가의 파쇄를 거치고 십자가의 처리를 거쳐야만 한다!

오직 이와 같은 파쇄만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몸에서 출구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간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바로 십자가의 파쇄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갈라2,19절에서 바오로는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사람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말해 준다.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하나님의 눈에는 그분께 속한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서 주님과 함께 못 박힌 것이다(갈라2,19-20; 로마6,6)

예를 들어, 만일 당신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는 나의 구주입니다라고 말 할 것이다. 이것은 구원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의 대답이다.

생명이 자란 그리스도인은 바로 나의 구주와 나 자신입니다. 내가 내 구주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혔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나아가 하나님외의 모든 것, 곧 혼에 속한 것, 죄에 속한 것, 모든 피조물, 옛 창조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깨달을 것이다.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다음의 말씀을 참고할 수 있겠다.

창세기 6장에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있다. 방주가 홍수를 거친 것은 사망을 통과함을 예표한다. 그러나 사실은 노아가 홍수를 통과한 것이 아니다. 노아는 방주 안에 있었고, 방주가 홍수를 통과할 때 노아와 그의 온 가족이 통과한 것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우리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다!

주님께 속한 사람은 모두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것은 사실이며 교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눈에 볼 때 당신과 나는 이미 죽었고 이미 끝났다. 십자가는 끝내는 역사를 이미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끝났다는 것은 하나의 태도이지 교리가 아니다. 이것은 빛이 필요하고 계시가 필요하다. 십자가에 관하여는 첫째가 사실이고, 둘째가 계시이며, 셋째가 체험이다!

어떤 이들은 우리에게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권한다.

그러나 누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는가?

 

당신은 자신을 스스로 못 박아 죽일 수 없다.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며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로마인, 헬라인, 유대인을 불러 하나님을 반대하는 그들로 말미암아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나사렛 사람 예수 자신이 못 박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안배로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다.

 

사람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없기 때문에, 첫째로 하나님은 십자가의 빛을 사람에게 주어 먼저 사람이 십자가의 객관적인 사실을 보도록 하고, 둘째로 그 후 십자가의 계시를 보게 하며, 셋째로 십자가의 주관적인 체험을 갖게 하신다!

(이 부분의 충분한 이해를 위해서는 http://cafe.daum.net/yoondaniel 로마서 연구를 참조하시길!)

 

그렇다면 무엇이 십자가의 체험인가?

신실하신 하느님은 우리에게 환경과 고난을 안배하여 우리의 삶에서 우리를 위해 우리의 십자가를 예비하신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 우리의 몸, 우리 주위의 사람들과 사물들이 협력하여 우리의 몸에서 파쇄하는 역사를 하도록 십자가를 이룬다!(로마8,28)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의 사실을 보았다면, 하느님의 손이 들어와, 우리의 몸에서 파쇄하고 타격을 가하는 역사를 하실 수 있도록 예비되어야 한다! 알렐루야!

 

주님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사람들이 그분을 따르는 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이 아니면 교회내의 당신의 직위나 직책이 어떠하든지 그것은 망상이요 위선이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우리는 이미 십자가에 있다!

하느님께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 주셨지만, 아마 오늘 혹은 내일, 장래 어느 날, 우리가 기꺼이 십자가의 파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손으로 안배하신 환경과 고난을 통해 우리 몸에서 파쇄하는 역사를 하게하고, 우리 몸에 상처와 파쇄된 부분이 있게 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분히 흘러나올 수 있게 되는 날이 당신에게도 있게 되기를 기도드린다!

 

그러므로 기꺼이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두 축복받은 자요, 은총받은 자이며,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서 능히 흘러나오게 하는 생수의 강이 된다!

이러한 사람은 바오로가 말한 것처럼 성도 가운데서 다른 것을 알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을 알고자 할 것이다(1코린2,2).

그리스도가 없으면 생명이 없고, 십자가가 없으면 길이 없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는 생명과 생명의 길을 완성하며 우리 몸에서 하나님 자신을 나타낸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생수의 강물을 체험하는 빛나는 주말이 되시기를!

알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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