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5-06-27 조회수841 추천수13 반대(0)

정원사들께서 오셔서 교구청 마당에 있는 나무들의 잔가지를 쳐주고, 모양을 다듬어 주었습니다. 한결 산뜻해진 교구청 마당을 보면서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1997년 제기동 본당에 있을 때입니다. 성당 마당에는 감나무가 한그루 있었습니다. 파란 감들이 주렁주렁 가지에 매달려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감나무에서 감들이 떨어져있었습니다.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감나무는 왜 감을 떨구어 냈을까요? 본당 신부님께서는 제게 감나무는 더 크고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해서 스스로 작고 볼품없는 감들을 떨구어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01년 적성 본당에는 대추나무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도 같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대추나무들도 더 크고 알찬 대추를 맺기 위해서 스스로 작고 볼품없는 대추들을 떨구어 내고 있었습니다. 욕심 때문에, 미련 때문에 참 많은 것들을 채우고 있는 저에게는 좋은 가르침이었습니다.

 

수요일에는 주일학교 동창들이 명동으로 왔습니다. 우리가 만난 것은 1979년이니까 벌써 36년이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사제인 저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친구들 역시 삶의 가지치기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밖에서 먼가를 찾으려던 친구들이 이제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들도 달려만 오던 길을 잠시 멈추고 싶었나 봅니다. 최근에 읽었던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겸손, 절제, 미완성,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예전에는 판단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려던 친구들이 저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었습니다. 저의 영성이 커진 것이 아니고, 친구들의 마음이 그만큼 더 넓어진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진리는, 깨달음은 어쩌면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 아닌가요? 굳어진 마음의 문을 겸손이라는 열쇠로 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것은 아닐까요?

 

마음의 문이 닫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시리아 사람 나아만은 요르단 강에 몸을 담그지 않았습니다. 시리아의 강이 더 깊고, 깨끗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라는 아들을 얻을 것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나이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비단 성서에만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편견, 선입관, 이념, 지역, 학연, 계층, 신분의 벽이 너무 높아서 우리들은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보이지도 않는 것을 보았다고 우기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표징을 보았고, 기적을 보았고,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의 문이 닫혀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백인대장을 봅니다. ‘그저 한 마디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저의 종은 깨끗하게 치유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감동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백인대장과 같은 믿음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스스로 작고 볼품없는 것들을 떨구어 내는 나무들에게서 백인대장의 모습을 봅니다.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 하는 친구들에게서 백인대장의 모습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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