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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6-27 조회수1,544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6월 27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Lord, I am not worthy to have you enter under my roof;
only say the word and my servant will be healed.
(Mt.8,8)
 
 
 
제1독서 창세 18,1-15
복음 마태 8,5-17
 

12일간의 성지순례를 마치고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염려 덕분에 참으로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새벽을 열며 묵상 글을 다시 시작합니다. 물론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서 조금 일찍 올리지만, 조만간 다시 정상적으로 되돌아 오겠지요? 그럼 오늘의 묵상 글 시작합니다.

어느 마을에 부자가 되는 것이 소원인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운영하는 농장으로는 도저히 부자가 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소득이 별로 나오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싼값에 농장을 팔아치우고 가족을 끌고 새로운 땅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런 땅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길 위를 떠도는 동안 가족들은 하나 둘씩 목숨을 잃고 혼자 남게 되었지요. 절망에 빠진 그는 거지가 되어 유랑하다가 쓸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편 그에게 농장을 사들인 다른 농부는 자신의 땅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고 온 정성을 바쳤습니다. 소출이 보잘 것 없어도 만족하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큰 결실을 맺으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지요. 그러다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글쎄 지난번 농장주가 척박한 땅이라고 버려두었던 뒷마당을 개간하던 중에 엄청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계몽문학 시대의 러셀 콘웰의 ‘다이아몬드 이야기’의 내용입니다. 부자가 되기를 원했던 농부는 자신의 농장에 대한 믿음이 없었지요. 반대로 농장을 새로 사들은 농부는 믿음뿐만이 아니라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가 자신의 믿음이 올바르다는 것을 그대로 증명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이것저것 다른 것에만 신경을 씁니다. 지금의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주님이 아니라, 세상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유혹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주님께 집중했을 때, 또한 주님께 대한 희망을 잃지 않을 때 ‘다이아몬드 광산’처럼 엄청난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백인대장이 도움을 청합니다. 중풍으로 힘들어하는 자신의 종을 고쳐달라는 것이지요. 만약 이 백인대장의 입장이라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셔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종이 누워 있는 집으로 함께 가주시던가 아니면 종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올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는 뜻밖의 모습을 보입니다. 굳이 당신의 집에 가시지 않아도 된다면서 예수님의 한 말씀만으로 충분히 종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보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만을 믿으려는 우리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간직하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백인대장은 예수님의 존재 그것만으로도 또 예수님의 한 말씀만으로도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게 하십니다.

믿음을 갖기가 참 어렵지요. 그 순간 복음에 등장하는 백인대장의 모습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따라 주님의 존재 그 자체로 또 말씀 한 마디로 다 이루어질 수 있음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엄청난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믿은 대로 분명히 됩니다.

스승이 제자들에게 말했다. 일생 동안 너를 저버리지 않을 유일한 사람은 바로 너다. 네 질문의 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도 너다. 네 문제의 해결책이 무엇인지 상상할 수 있는 것도 너다(앤소니 드 멜로).


로마에 유학 중인 인천교구 사제들과 함께.

 

똑같은 이유인데 다른 시선인 우리들

언젠가 어떤 신부님과 함께 해외여행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행지에서 본 신부님의 모습이 평소와 많이 다른 것입니다. 즉, 평상시에 단정하고 깔끔하게 차려입는 모습과는 달리 너무 후줄근한 옷차림을 해서 요즘 젊은이들의 말로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아니, 평소에 이렇게 옷을 입고 다니지 않잖아요.”

그러자 이렇게 말씀하세요.

“어차피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 곳인데 어때? 대충 입는 거지. 입다가 빨 때가 되면 그냥 버릴 거야. 한국에서는 입지 않을 테니까.”

해외성지순례를 갔을 때도 기억납니다. 제가 잘 아는 자매님인데 평상시에는 점잖고 화려하지 않은 색깔의 옷을 입으시는데, 해외에 나간다고 그런지 자매님의 모습에서 보기 힘든 화려한 옷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아니, 평소에 이런 옷을 입지 않으시잖아요.”

이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어차피 저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 곳인데 어때요? 따라서 평소에 입을 수 없는 옷들을 챙겨서 입어야지요. 한국에서는 입기 힘드니까요.”

이 두 분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알아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어떤 옷을 입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한 분은 버려도 될 옷을 그리고 다른 분은 입어보고 싶었으나 입기 힘든 옷을 선택하신 것이지요.

똑같은 이유인데 다름이 분명합니다. 이분들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세상 삶이 다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똑같은 이유이지만 그 이유를 바라보는 시선을 다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많은 이들이 다른 시선 때문에 다투고 단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다른 시선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에는 베드로 대성당보다 높이 세울 수 있는 건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진은 어디서 찍었을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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