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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매일미사묵상] "거리를 좁힙시다 - Santa Marta 미사 "(6월26일 금)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5-06-30 조회수910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Santa Marta 매일미사 묵상입니다.

                                    http://www.news.va/en/sites/reflections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cotidie/2015/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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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5년 6월 26일 금요일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강론 당일 매일 미사 말씀] 제1독서: 창세기 17,1.9-10.15-22

화답송 : 시편 128(127),1-2.3.4-5(◎ 4 참조) 복음: 마태오 복음 8,1-4

http://info.catholic.or.kr/missa/?missaid=6636&gomonth=201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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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a Marta 미사 – 거리를 좁힙시다.

http://www.news.va/en/news/mass-at-santa-marta-let-us-close-the-distance

 

2015-06-26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가가라, 더러워질까 두려워 하지 않고 그들을 만질 수 있게 거리를 좁혀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불순한 질병과 사회적인 소외에서 나병환자를 해방시키실 때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여 주신 ”그리스도의 친밀함”입니다. 6월 26일 , 금요일에 Santa Marta 미사에서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과 교회 전체가 “친밀함”의 자세를 갖기를 요청했습니다. 교황의 다음 Santa Marta 미사는 9월 1일 화요일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의 말씀 마태오 복음(8,1-4)에서 첫 번째 구절을 반복해 말하면서 강론을 시작했습니다. 교황은 설명했습니다. “그 사람들 모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들어 왔던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이 ‘권위를 갖고’ 그들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놀랐습니다. “군중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고 복음은 명시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지치지 않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교황은 상기시켰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루 종일 함께 머물러 있었기에 마침내 사도들이 그들이 배고플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그들에게 기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주변에 모였습니다. 교황 성하는 “이 사람들은 길 위에서, 삶의 행로에서 예수님과 함께 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따르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 사람은 누굴까?’궁금해 하면서 호기심으로 예수님을 멀리서 바라보았습니다. 프란시스코 교황은 설명했습니다. “예상과 달리 그렇게 놀라운 가르침은 결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한 옆에서 바라보고만 있었던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율법이 다가가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나병 환자는 사람들의 무리에서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 나병 환자는 그의 마음 안에서 예수님께 다가가고 싶은 갈망을 느꼈습니다.” 교황은 말했습니다. “그는 용기를 냈고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다가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고 용기를 내어 다가갔습니다. 다음과 같이 소박하게 그의 기도를 바치면서 말입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깨끗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나병은 종신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병 환자를 치유하는 것은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웠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소외되었던 이유였습니다. 그들 모두가 그렇게 존재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과 섞일 수 없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계속 말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소외시킨 자들도있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고 실수하게 만들고 비난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언제나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병 환자는 자기 자신이 더럽고 병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다가갔습니다.” 교황이 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분은 그에게 손을 대지 않은 채 멈춰 서 있지 않으시고 오히려 더 가깝게 다가서시어 그분의 손을 뻗어 그를 낫게 하셨습니다.    

 

교황은 설명했습니다. “친밀함”은 그토록 “중요한 말”입니다. “여러분은 친밀함 없이 공동체를 만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나병 환자에게 ‘나아라!’라고 말씀만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가깝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손을 대셨습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 더러운 그에게 손을 대신 그 순간 예수님은 더러워지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수님의 신비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더러움, 우리의 부정함을 받아 들이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을 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사도 바오로가 다음과 같이 쓰면서 훌륭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형상 안에 계시면서도 하느님과 같으신 것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죄가 되셨다”고 확신합니다. 예수님께서 죄가 되셨고, 예수님께서 소외되셨고,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다가감으로써 부정해지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하느님과 같으신 것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비우시고, 가까이 다가 서시고 죄가 되시고, 더러워 지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겠지만 우리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좋은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리라고 자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분의 “깨끗하심”으로 더러워 지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다음 마태오는 서술하기를, 예수님께서는 병에서 나은 나병 환자에게 사제에게 가서 나병 환자가 나았을 때 해야 할 일을 하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한 걸음 더 나아 가십니다.

 

본질적으로 “사회 안의 삶에서 소외되었던 그 사람을 예수님께서 품어 주십니다. 교회안에서 품어 주시고 사회 안에서 품어 주십니다.” 그분은 가르쳐 주십니다. ”가라, 그러면 있어야 할 모든 일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결코 소외시키지 않으십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는 소외된 사람들을 품기 위해서, 우리를, 죄인들을, 소외된 사람들을 그분의 삶으로 품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름답습니다.” 교황은 말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당시에 예수님을 따랐으며 역사 안에서 예수님을 따라 왔으며 그들은 그분이 하시는 말씀에 놀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악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시험하고 그분을 비판하고 비난하기 위해서 멀리서 지켜 봤습니까.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나병 환자와 같이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갈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용기가 없어서 멀리서 지켜 봤습니까. 그리고 그때에 예수님께서 먼저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분의 존재하심 안에서 그분은 모든 이에게, 우리 중에 한 사람, 우리 같은 사람에게 손을 내미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죄인에게. 죄가 없으신데도 우리의 죄로 더럽혀 지시어 죄인이 되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도의 친밀함’입니다.”

 

“친밀함은 우리 각자에게 아름다운 말입니다.” 교황은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가까이 다가서는 방법을 나는 알고 있는가? 나에게 힘이 있는가? 소외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을 만지기 위한 용기가 나에게 있는가?” 교회와 본당과 공동체와 축성된 남자와 여자, 주교, 사제 모든 사람들이 또한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다가설 용기가 있는가, 아니면 계속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가? 나는 예수님처럼 거리를 좁힐 용기가 있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고 나서 강조해 말했습니다. “지금 이 제대 위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실 것입니다. 그분은 거리를 좁히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이 은총을 그분께 간구합시다. 주님, 제가 궁핍한 사람들 ― 눈에 보이게 궁핍한 사람들이나 숨은 상처를 갖고 있는 궁핍한 사람들 ― 에게 다가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 주소서.” 교황은 강론을 마무리하며 말했습니다. 이것이 “다가서는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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