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5-07-03 조회수1,007 추천수8 반대(0)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린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엘 갔습니다. 아버지는 탕 속으로 들어가셔서 아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애야 들어와라 시원하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탕 속으로 들어갔다가 기겁을 하고 나옵니다. 시원하기는커녕 물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세상에 믿을 놈 아무도 없다.’ 아이의 피부에는 탕 속의 물이 너무나 뜨거웠기 때문입니다. 목욕을 마치고 아버지는 미안한 마음에 붕어빵을 1000원 어치 샀습니다. 아버지는 3, 아들은 2개를 먹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을 합니다. 아들아! ‘배부르지!’ 아들은 말을 합니다. ‘2개먹은 아들 배부르면 3개먹은 아버지는 배 터지겠네!’ 아버지가 아들의 머리에 군밤을 먹였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그러더랍니다. ‘때려라, 때려 네 아들 죽지, 내 아들 죽나!’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바람 풍자를 아버지가 바담 풍이라고 읽으면 아들은 당연히 바담 풍이라고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가 바람 풍이라고 읽으라고 야단을 치면 아들은 그 말을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늘 바담 풍이라고 읽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야단치기 전에 아버지는 자신의 발음을 교정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들의 신앙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박해의 시대에는 힘들고 어렵지만 신앙은 삶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신앙은 기쁨이었고, 험난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정표였습니다.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면 더욱 열심히 살 것 같지만 역사는 꼭 그런 것만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으로 옷을 갈아입은 유럽교회는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열매를 먹으면서 참된 자유와 진리를 얻을 수 있는 신앙의 길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는 점점 사라지고, 고색창연한 건물인 교회만 남게 되었습니다. 유럽의 교회가 텅텅 비어가는 것은, 젊은이들이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옷을 입고 지내는 부모님들에게서 진리와 자유를 주는 신앙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도 그렇습니다. 복음의 씨앗이 떨어져서 갖은 시련과 박해를 겪었지만 신앙은 조금씩 열매를 맺었습니다. 저도 어릴 때 몇 시간씩 걸어서 성당엘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동생을 업고, 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서 고개를 넘어 성당엘 갔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성당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판공 때는 몇 시간씩 기다려서 성사를 보았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성탄과 부활에는 성당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숨이 막히는 줄 알았습니다. 유년시절 만원버스를 탔던 기억과 비슷합니다. 아침기도, 저녁기도, 묵주기도, 연도는 누가 가르쳐 주시 않아도 가족들이 모이면 함께하는 일과였습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은 어른들에게서 자주 듣던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많이 변했습니다. 성당이 5분 거리에 있어도, 미사시간이 자주 있어도 주일 미사에 빠지기 쉽습니다. 다른 중요한 일들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기도 빠듯하기 때문에 함께 모여서 기도를 하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공부해야 하고, 좋은 대학에 가야하고, 성공해야 하는 것이 생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나누고, 봉사하는 것은 어른이 되면 해도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오죽하면 봉사를 하면 점수를 준다고 합니다. 점수를 받는 봉사는 이미 봉사가 아닌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참으로 행복하다.’ 그리고 치유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어려서 신앙을 보고 배운 저에게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신앙은 보고 배워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보여주고, 가르쳐 주시 않는 신앙을 어찌 배울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곧 시들기 마련입니다. 화병의 꽃은 결코 아름다움이 오래 갈 수 없습니다. 물질문명, 과학, 이성, 산업화, 자본주의, 성공, 출세, 권력이라는 격랑이 세차게 몰아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믿음은 어쩌면 바람 앞의 촛불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세상을 밝히는 촛불이 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의 뜨거운 신앙이 진리의 소금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