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 상징 읽기] 천당 나무 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 크리스마스트리의 기원 성탄절이 다가오면 기쁨과 설렘 속에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는 관습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서양에는 종교 혁명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가 크리스마스트리를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말이 퍼져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없다. 어찌 보면 이 주장은 중세기부터 전해 오는 가톨릭교회의 풍부한 유산을 차용하거나 부정하려는 개신교 측의 시도들 가운데 한 가지 풍설일 따름이다. 그와 관련된 진실한 이야기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크리스마스트리는 중세기에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관습을 세상에 전하고 퍼뜨린 이는 독일인들이었다. 성탄 시기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꾸미는 관습은 주님 성탄의 순수한 의미를 볼 줄 아는 감수성을 타고난 독일인들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마침내 온 세상에 퍼졌다. 동방의 가톨릭교회들에서는 성탄 전날인 12월 24일을 아담과 하와의 축일로 지내며 인류의 첫 선조들을 성인으로 기리고 공경했다. 이것이 서방에까지 전해져서 서방 교회들도 아담과 하와를 공경하게 되었고, 첫 천년기의 막바지인 10세기에는 아담과 하와의 축일을 지내는 것이 매우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관행이 되었다. 물론 서방 가톨릭교회의 라틴 전례력에 이 축일이 공식으로 도입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 두 인물을 성인으로 공경하는 대중적인 신심이 제지되지도 않았다. 실제로 유럽의 오래된 성당들에는 이 두 인물의 상(像)이 지금도 다른 성인들의 상과 함께 모셔져 있다. 그리고 12세기 무렵, 12월 24일이 되면 그리스도인들이 이 축일을 기념하면서 천당에 관한 연극(paradise play, 이하 ‘천당극’)을 공연하는 관습이 시작되었다. 중세기에는 성경 말씀 등을 소재로 하는 짤막한 신비극(신비로운 종교극, mystery play)을 공연하는 것이 신자들을 위한 신앙교육 내지는 교리교육의 한 방편으로도 성행했는데, 심지어는 미사 중에도 사제는 미사를 라틴어로 집전하고 라틴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신자들은 신비극을 공연했다고 한다. 그리고 천당극은 가장 인기 있는 신비극 중 하나였다. 천당극에서는 주로 아담과 하와가 창조된 이야기, 그들이 죄를 지은 이야기, 낙원에서 쫓겨난 이야기 등이 표현되었다. 그리고 천당극은 언젠가 구세주가 오실 것이라는, 그분의 강생에 대한 약속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이 연극을 공연하기 위해 설치되는 몇 안 되는 소품들 가운데 하나가 천당 나무(paradise tree)라고 불리던 커다란 상록수였다. 이 나무의 가지에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를 상기시키는 붉은 빨간 사과가 달려 있었다. 이후 인문주의, 르네상스, 개신교 혁명이 일어나면서 천당극을 공연하는 관습은 차츰 사라져 갔다. 이후 여러 세기 동안 이런 종류의 연극들을 공연하는 극장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의 가톨릭 신자들은 천당 나무를 잊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첫 선조들을 기리고 공경하기 위해서 그들의 축일에, 곧 성탄절 무렵에 각 가정의 거실에 천당 나무를 세우는 일이 관습으로 굳어졌다. 천당극에 소품으로 쓰이던 형태 그대로 상록수인 전나무에 사과를 매달았다. 나아가 인류의 구속과 구원의 상징인 성체를 나타내는 흰 전병도 매달았다. 그리고 16세기부터는 이 나무에 초도 매달아 두게 되었다. 천당 나무로 전나무가 쓰이게 된 것은 전나무의 특징에서 기인한다. 전나무는 하늘을 향해서 곧게 그리고 높이 자라는 상록수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늘 높이 곧게 자라는 전나무를 보면서 하찮은 현세적 욕망을 경멸하고 오로지 하느님(또는 천국)만을 동경하며 신앙에 매진하는 이들, 그리하여 하느님께 선택된(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뽑힌) 이들과 그러한 경지에 이를 정도로 뛰어난 신앙심을 발휘한 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성 보니파티오(675?-754년)가 교황의 명을 받아 이교가 널리 퍼져 있던 독일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다는 오래된 이야기가 전해 온다. 성인은 이교 세력이 가장 강성하던 지역으로 가서 이교도들이 신성시하는 떡갈나무를 잘랐다. 이교도들이 그들의 신에게 봉헌했다는, 그래서 나무에 손상을 입히거나 해코지를 하면 신의 벌이 내릴 것이라고 믿어 마지않던 신성한 나무를 잘라냈지만, 성인에게는 아무런 변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성인은 이교도들의 예상이나 두려움과는 달리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힘주어 말했고, 베어낸 떡갈나무는 하느님의 집인 경당을 짓는 데 사용했다. 나아가, 떡갈나무를 베어낸 자리에는 전나무를 심었다. 그러고는 사시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는 전나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神性)을 나타내는 나무라고 설파했다. 이렇게 시작된 천당 나무는 성탄절 나무, 곧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대한 첫 언급은 독일의 영토였다가 프랑스에 귀속된 알사스 지방의 15세기 초의 기록에서 발견된다. 이 시기는 루터의 종교 혁명(1517년)보다 100년 정도 앞선다. 그리고 17세기 초의 한 편지글에는 크리스마스트리 세우는 것이 이미 관습으로 정착되었음을 증언하는 내용이 나온다. “성탄절이면 스트라스부르 지방의 사람들은 거실에 전나무를 세우고 여러 색깔의 종이들을 오려서 만든 장미꽃들, 사과들, 전병들, 금박 장식들, 사탕들을 매달아 둔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크리스마스트리를 각종 아름답고 고운 장식물들로 꾸미기 시작했다. 19세기까지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데 주로 먹을 수 있는 품목들이 사용되었다. 그런 참에 1880년경 독일 튀링겐 지방의 유리 세공인들이 녹은 유리물을 대롱에 묻힌 다음 불어서 방울이며 종 모양으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 뒤로는 이 유리 제품들이 이내 사과를 대체하게 되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는 알자스 지방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다른 지역으로 전해지며 인기를 누리는 가운데 널리 퍼져나갔다. 유럽 대륙 이외의 곳으로도 전해졌다. 미국에는 식민지 시대(17~18세기)에 독일에서 건너간 이주민과 군인들에 의해 전해졌다. 영국에서는 독일 태생인 빅토리아 여왕이 1841년에 공식으로 들여온 크리스마스트리가 뜨거운 환영을 받았는데, 영국인들은 이것을 마치 그들이 창의적으로 생각해낸 산물이요 관습인 것처럼 여겼다. 이렇듯, 오늘날 그리스도교 사회가 아닌 곳에도 흔히 세워지는 크리스마스트리는 중세기의 천당 나무, 곧 우리의 첫 선조들이 지은 죄를, 그 죗값을 치르고 인류를 구원하실 구세주가 오시리라는 약속을 상기하게 해 주는 나무에서 기원한다. 아담에 관련된 그 밖의 정보들 크리스마스트리 말고도, 인류의 첫 선조인 아담과 관련되는 표현 몇 가지가 있다. ‘우리 안에는 옛 아담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옛 아담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취약한 부분, 곧 유혹 또는 죄에 굴복하기 쉬운 죄로의 경향성을 뜻한다. ‘마지막 아담’이라는 말도 있다(1코린 15,45 참조). 이는 인간이 첫 아담의 불순명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것을 자신의 순명으로써 복구해 주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고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을 때,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땅을 일구어서 살아가도록 명하셨다. 그 뒤로 정원을 가꾸는 일은 ‘아담의 직업’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실제로 한때 아담이 정원사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진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사람의 목, 특히 남성의 목에 튀어나온 연골은 ‘아담의 사과’라고 불리는데, 한때 이는 하느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이르신 열매의 조각이 아담의 목에 걸린 것이며, 모든 인류가 아담의 죄를 물려받았음을 말해 주는 가시적인 흔적이라고 여겨졌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12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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