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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7-05 조회수1,464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7월 5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you will be led before governors and kings for my sake
as a witness before them and the pagans.
(Mt.10.18)
 
 
제1독서 2역대 24,18-22
제2독서 로마 5,1-5
복음 마태 10,17-22


지난 번 이태리 성지순례를 다녀올 때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보게 된 광경이 하나 있습니다. 화장실에 갔다가 제 자리로 돌아오다가 각자의 자리 앞에 있는 모니터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모니터를 통해서 사람들은 영화나 방송 그리고 기타 정보들을 볼 수가 있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보고 있는 화면들이 모두 다른 것입니다. 서로 다른 영화를 보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게임을 하고 있으며, 음악이나 뉴스를 듣는 사람도 보였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화면들이 조화를 우리는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만약 다 똑같은 화면이라면 어떤 통일성을 볼 수도 있겠지만 그리 멋져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느낌을 어떤 신부님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당연한 거 아냐?”라고 말씀하시네요. 맞습니다. 다양한 모습들이 멋지고 아름다운 것인데 이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왜 그리 많을까요? 나의 생각과 다르다고 판단하고 단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들에게 ‘+’ 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 수학자는 덧셈이라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합니다. 또 신부님은 십자가라고 하고, 교통경찰은 사거리라고 하고, 간호사는 적십자라고 하고, 약사는 녹십자라고 대답합니다.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이렇게 답이 다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답이 틀린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인 것이지요.

산의 모습이 모두 똑같다면 아마 사람들은 등산을 즐기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산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 산, 저 산을 쫓아서 등산을 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다름에 감사할 수 있고, 또 그 다름을 멋있다고 칭찬해 주면 안 될까요? 항상 우리를 지지해주시는 주님처럼 말입니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로 너무나 젊은 나이에 순교를 하시게 되지요. 박해를 가했던 당시의 집권자들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비롯한 많은 천주교인들이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이 틀림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끔찍한 박해를 했던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들의 큰 착각은 틀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모습은 계속 되는 것 같습니다. 나와의 틀림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 시대의 박해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처럼 다름의 아름다움을 인정해주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세상은 더욱 더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간이 될 것입니다.

삶에는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순 없지만, 옆에 있어 줄 순 있다. 결국 오랜 시간을 두고 본다면 그것이 가장 강한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이주향)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참 잘했어요.

초등학생 때, 숙제나 일기 등을 제출하면 선생님께서는 이를 보시고는 맨 뒤에 ‘참 잘했어요.’, 또는 ‘잘 했어요.’라는 도장을 찍어 주셨습니다. 저는 정말로 잘 한 것인 줄 알고 다른 친구들과 비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 역시 이 둘 외의 도장은 찍혀 있지 않더군요. 그러다보니 저와 친구들은 숙제를 했다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지, 다른 친구들과 내 점수를 비교하는 등의 행동이 굳이 필요 없었습니다. 하긴 성적표에도 단순히 ‘수우미양가’라고 표시될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이때는 비교가 필요 없었고, 그래서 친구들과 즐겁게 놀면서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다 숫자화 되어 버렸습니다. 학교 성적도 숫자로 표시되었고 몇 등을 했는가가 중요하게 평가됩니다.

언젠가 어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이 “ 내 점수는요~~ ”라고 말하는데, 솔직히 이 부분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사람마다 노래가 와 닿는 정도가 분명히 다를 텐데, 보편적인 모든 사람을 제외하고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단 3명으로부터의 평가가 정답인 듯이 되어 버리는 모습에 씁쓸한 기분이 들어서 그 뒤로 보지 않게 되었지요.

세상이 점수에 의해 규정되면서 비교의 가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 역시 때로는 홈페이지 방문자 수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다른 곳과 비교하기도 하더군요. 숫자는 그냥 숫자일 뿐인데 말입니다.

숫자로 명확하게 나타나는 주관적인 판단도 중요할 수 있지만, 객관적으로 ‘잘했어요, 참 잘했어요.’라고 서로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비교하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고 힘이 되어주면서 살 수 있는 곳이 되지 않을까요?



참 잘했어요. 도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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