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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담아야 한다!(마태9,14-17)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07-06 조회수1,443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574()/복음말씀묵상/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전통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권세(마태9,14-17))

 

 

마태9,14절은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앞 단락(마태9,9-13)에서는, 마태오를 부르실 때에 많은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는 예수님을 향한 바리사이들의 항의(마태9,9-13)에 대하여 대답하셨다.

 

오늘 본문 9,14절부터는 주님께서 금식에 대한 요한의 제자들의 항의에 대답하신다.

요한과 그의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고 선포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므로 율법의 원칙을 따르는 그들에게는 금식하는 것이 옳았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람들이 왜 금식하지 않는지를 물었던 것이다.

 

9,15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15절의 예수님의 대답에는 엄청난 소식과 요구가 숨어 있다!

혼인 잔치는 구원의 때가 성취되었음을 나타내는 상징이다(이사62,2-5; 요한2,1-11).

지금 혼인 잔치가 시작되었다!

신랑이 이미 와 있는 것이다!

지금 주님은 금식하는 것보다도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라고 강조하신다!

혼인 잔치와 금식 할 때는 두 사건이 섞여지지 않는다!

 

온 백성이 속죄일에 행해야 했던 금식은 속죄일 자체와 더불어 불필요한 것이 된 것이다. 특히 바리사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하며 유대교의 전통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고(루카18,12), 아마도 요한의 제자들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바리사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의 계약을 배반한 것에 대한 비애 때문에 그리고 회개와 속죄를 수행하기 위하여 금식을 행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마치 혼인 잔치와 같다고 대답하셨다. 혼인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은 애곡하거나 금식하는 것은 적합지 못한 일이었다. 혼인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은 즐겁게 먹고 마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금식이라는 관습을 계속 지키는 것은 몰이해와 불신앙을 의미하는 것이다. 곧 그것은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 그의 소식과 그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거부당하실 것을 예견하셨는데, 이는 그가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라고 덧붙이셨기 때문이다. 물론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도 곧 다시 금식할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신랑에게 어떤 짓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모든 것은 그 때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금식의 때가 아니다(코헬3,1-8).

 

이어서 예수님은 그의 사역과 세례자 요한의 사역의 관계를 설명하셨다.

9,16절은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당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새 시대는 낡은 형식들을 폭파시킨다!

여기서 새 천 조각은 밖의 생활을 상징하는 반면에, 17절의 새 포도주는 내적인 생명을 상징한다. 곧 옷(새 천 조각)은 바깥에 나타나는 것이며, (새 포도주)은 속에서 격동시키는 것이다.

하나는 생활이며 다른 하나는 생명이다!

하나는 객관적인 것이며 다른 하나는 주관적인 것이다!

 

신약의 복음은 외적인 생활과 행동을 새 옷으로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내적인 생명을 새 술로써 사람들에게 주입한다!

율법의 규정과 규례는 낡은 옷과 같다. 금식이 바로 그러한 것들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새 것과 옛 것을 섞는 것은 복음을 사용하여 율법을 돕는 것이다. 곧 이렇게 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옷을 깁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또한 찢어지게 한다.

 

예를 들어, 할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갈라티아서는 할례가 더 이상 필요 없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율법으로 거룩하게 될 수 없음을 말한다. 로마서는 사람이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음을 말한다. 율법이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없는 것처럼 그것은 사람을 거룩하게 할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정확히 주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가르치고 계신 중점이다!

계명 방면의 율법과 원칙 방면의 율법은 서로 별개의 문제이다. 곧 율법의 계명은 주님에 의해서 보완되었지만, 율법의 원칙은 그분에 의해 내어버려졌다!

 

9,17절은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포도주는 속 생명을 가리킨다. “새 포도주는 숙성되기 위한 격동시키는 능력이 멈추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넣으신 생명은 새 포도주와 같다!

 

헌 가죽 부대는 율법의 계명들을 상징한다!

새 포도주헌 가죽 부대에 넣어졌을 때 새 포도주의 격동하는 능력으로 헌 가죽 부대가 터진다. 그러므로 주님이 주신 하느님의 생명을 낡고 헌 율법의 계명 안에 넣는 것은 그것을 터져버리게 할 것이다.

마태복음 5-7장에서 우리는 새 가죽 부대뿐만 아니라, “새 포도주가 들어있는 새 가죽 부대를 보게 된다. 마태복음 5-7장은 우리가 무엇을 우리 속에 영접했는가를 계시함으로써, 우리에게 거기서 언급된 내용들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넣으신 창조되지 않은 그분의 생명은 새 포도주인 반면에, 묵은 헌 포도주는 육체의 생명을 상징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새 포도주낡고 헌 가죽 부대가 보존되는 것이다. 이것은 율법을 내어버릴 때 그것이 보존됨을 의미한다.

새로운 방법(예수의 방법)과 옛 방법(요한과 바리사이의 방법)은 전혀 섞일 수 없다는 답변이시다.

 

주님은 우리의 신랑이시자, “새 천 조각이시며, “새 포도주이시다!

새 포도주새 가죽 부대안에 넣어야 한다. “새 가죽 부대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담는 합당한 교회생활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백성은 거듭난 사람들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며 교회가 된다(로마12,5; 에폐1,22-23). 또한 개인적으로 누리는 그리스도는 새 포도주로 내적인 생명이고, 단체적으로 누리는 그리스도는 새 가죽부대로 외적으로 새 포도주를 담는 그릇이다알렐루야! 아멘.

 

(전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 을 참고 하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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