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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지전능하신 하느님(희망신부님의 글)
작성자김은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5-07-11 조회수864 추천수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전지전능하신 하느님(마태8,28-34, 07.01)


찬미예수님! 알렐루야!

오늘 창세기에서 사라와 하가르의 갈등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본부인인 사라가 자기 스스로 아기를 낳을 수 없자 자기 몸종에게서 아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여 하가르가 아기를 낳았는데 막상 본인이 아들을 낳으니 이제는 구박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결국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과 두 번째 부인인 몸종을 내보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하가르와 이스마엘도 사랑하여 내보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분들이 더 잘 알 것 같습니다. 여인과 아기는 제 명대로 다 살았을까요, 아니면 중간에 암이 걸려 일찍 죽었을까요? 제가 볼 때는 제 명에 못살았을 것 같습니다. 병이 걸려 죽던지 사라에게 맞아 죽던지 하지 않았을까요? 힘들어도 오히려 집을 떠나는 것이 그 여인과 그 아들에게는 복이 되었고 그럼으로써 큰 민족이 이루어졌습니다. 어쨌든 인간 안에는 시기, 질투, 이런 마음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그 감정이 심해지다 보면 자기분열, 정신분열까지 가기도 합니다. 하가르와 이스마엘이 사라와 함께 머물렀다면 그런 경우까지 갔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가다라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 들린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알아봅니까, 못 알아봅니까? 알아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하고 외칩니다. 그러면서 반항, 대항, 저항하며 왜 저희를 간섭 하냐며 대드는 모습입니다. 마침내 그들은 도저히 자신들이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은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하고 청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시자 그들은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그 마귀는 사람에게서 쫓겨나게 됩니다.


사람들마다 나쁜 생각들이 조금씩은 모두 있습니다. 제 안에도 있고 여러분 안에도 있습니다. 나쁜 생각들, 나쁜 습관들이 사실은 그 안에 나쁜 영들이 달라붙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고 정화한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내 안에 있는 나쁜 습성들과 싸우는 것이며 기도와 희생과 애덕을 실천함으로써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주님께서 죽을 때까지 허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있음으로 인해서 그 사람이 더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사도도 옆구리를 찌르는 가시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제 경우는 이 비염입니다. 제 비염을 고쳐달라고 몇 차례 기도도 하였고 실제로 고쳐진 적도 있었습니다. 주님은 비염의 이 코맹맹이 소리로 많은 사람들이 치유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제가 이 코맹맹이소리로 강론을 하고 노래를 부르면 많은 사람들이 회개의 은총을 받고 위로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면 제가 죽을 때까지 데리고 가겠습니다하며 비염을 데리고 갑니다.


우리 안에 나쁜 영들이 모두 조금은 있으나 그 상태가 매우 심각한 사람도 있고 아주 미약한 사람도 있으며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본인의 고약한 성격에 달라붙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내가 이렇게 버럭 화를 내는 것은 내 성격이지 뭐. 하지만 난 뒤끝은 없어.’하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 말은 난 고치고 싶지 않아.’하고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버럭버럭 화내는 것도 고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맨 날 우는 소리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꾸 찬미를 해야 합니다. 성가 중에 18번을 몇 곡 정하여 비올 때 부르는 노래, 햇볕 날 때 부르는 노래, 꽃이 필 때 부르는 노래 등등을 정하여 자꾸 부르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슬픔이 떠나가고 내 안에 기쁨의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게 됩니다. 사람이 변화되려면 매우 힘이 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니까 변화되려고 하지 않고 덮어두려고만 합니다. 지난번에 수녀님께서 오셨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셨지만 그 안에 하느님께서 주신 귀한 말씀이 있는데도 준비가 된 사람들만 그 말씀을 알아들었습니다. 준비가 안 된 사람은 아무리 좋은 말씀을 해도 못 알아듣습니다. 못 알아들으니 다 비슷한 말이네.’라고 치부해버립니다.


사람마다 상태가 다른데 마귀들이 간을 봅니다. 사람들이 제 앞에 오게 되면 화를 낸다던지 공격적으로 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 안에 분노와 억울함이 많으면 그런 공격을 받을 때 같이 분노하고 화를 내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 안에 있는 악과 싸울 수 없습니다. 분노로서 분노를 제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노로서 분노를 제압하게 되면 그 안에 있는 악이 더 자라게 되고 내 안에도 분노가 점점 더 커지게 됩니다. 그럴 때 그런 것들을 다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참 화가 나겠네요. 속상하겠네요. 이렇게 더운 데 엄마가 억지로 가자고 해서 따라왔으니 얼마나 속상하겠어.’하며 분노들을 다 수용합니다. 어떤 경우는 오자마자 집에 가겠다고 하고 배가 아프고 기침이 난다하며 도망치려하며 간을 봅니다. 그렇게 저를 쿡쿡 찌르며 얼마나 센가 보자합니다. 또 어떤 때는 와서 횡설수설하며 대들기도 하면 그 상황에 맞게 주님께서 지혜를 주시는 대로 대처하기도 하고 혹은 속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잠잠해져라.’하면 수그러듭니다. 제가 속으로 이야기해도 그 영은 다 아니까 수그러듭니다.


한번은 월요일 쉬는 날인데 새벽에 미사하고 일산에 강의가 있어서 강의하고 병원에 들러서 귀가한 날이었습니다. 부모가 딸을 데려왔는데 딸이 무당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딸은 신기가 있고 자기 안에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며 내일이면 무당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토요일, 주일 지내고 월요일까지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니 저도 몸이 무척 피곤하였으나 그런 딸을 데려온다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몸이 아무리 피곤해도 지쳐서 힘이 빠져 있으면 그 영이 저를 얼마나 우습게보겠습니까. 그러니 정자세를 하고 하나도 안 피곤한 척 그래 얼마나 힘들었니.’하며 다 받아주니 그 딸이 슬슬 어린 시절부터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니.’하며 그 고통과 아픔을 같이 해주고 그래도 하느님은 한시도 너를 떠난 적이 없고 너를 변함없이 사랑하신단다.’하며 하느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계속 전해주게 되면 차츰 하느님을 받아들이게 되고 예수님을 청하면서 고해성사를 보고 병자성사를 주게 되면 그 영혼이 자유로워지고 풀려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렇게 무섭고 고통에 가득 찼던 얼굴이 갑자기 환하게 천사처럼 변화되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이제는 기쁨으로 생활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존재들이 우리 안에도 조금씩은 다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인정할 때 자기의 부족한 모습들을 끊임없이 하느님 앞에 보여드리고 변화되려고 노력하고 점점 거룩함에로 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내 잘못은 없어. 늘 저 사람 잘못이야.’하며 남편 잘못이고 아내 잘못이고 아이들 잘못이라고 하게 되면 나는 변화되지 않습니다. 나는 전혀 변화가 안 되고 남들보고만 변화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도 그런 모습들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런 것들이 정의를 가장해서 들어와 있어서 스스로 나는 정의의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내가 악의 도구로 쓰여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영적이지 못할 때는 그런 것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냥 그 영을 데리고 삽니다. 데리고 살면서 그 영이 시키는 대로 살다보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그 영의 하수인이 되는 것이고 나중에는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하며 자기를 인정해버립니다. 그러나 내가 죽었을 때 내 영의 그런 상태를 보게 되면 얼마나 놀랄까요.


그러니 우리는 죽을 때까지 정화되고 죽을 때까지 성화의 길로 나아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때에 가장 좋은 방법은 고해성사입니다. 고해성사를 한 달에 한번 지속적으로 보겠다고 결심하고 고해성사 보기 전에 조용히 성체 앞에 앉아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면서 성찰해봅니다. 내가 자주 떨어지는 죄가 무엇인가, 내 입으로, 내 눈으로, 내 손으로? 무엇으로 내가 자주 죄를 범하는가? 이렇게 나를 바라보면서 겸손되게 사제 앞에 가서 다 고해할 때 내 영혼이 조금씩 힘을 얻고 정화가 되고 거룩함에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만큼 하면 됐지. 판공성사 봤는데 됐지.’하면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저는 한 달에 한번 이상 고해성사를 꼭 봅니다. 그렇게 함으로 제 영혼 스스로 자만하지 않고 늘 겸손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저도 허물이 많고 제 안에 교만이 많이 있습니다. 그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제 앞에 가서 고백함으로써 내 자신이 나약하다, 유혹에 약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꾸준히 노력할 때 우리는 큰 죄에 떨어지지 않고 교만에 떨어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독서 말씀과 복음 말씀을 생각하면서 전지전능하시고 마귀사탄마저도 제어하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어제는 바람과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고 주일날에 죽었던 사람을 살리시기까지 했던 예수님 또한 빵을 많게 하신 예수님, 이분이 바로 하느님이시고 모든 것들은 다 이분께 굴복하는 것입니다. 어제와 그제는 남쪽에만 비가 온다하여 북녘 땅까지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어제 프로야구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되었음을 보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에 골고루 비를 내려주심에 감사했습니다. 모든 날씨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모든 마귀도 예수님 앞에서는 꼼짝 못한다는 믿음을 갖고 우리는 살아갑니다. 우리 안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미사를 봉헌하면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모든 것들이 하느님 앞에 다 굴복한다는 굳센 믿음, 더 큰 믿음을 달라고 청하며 기도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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