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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7-13 조회수1,224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7월 13일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Whoever loves father or mother more than me
is not worthy of me,
and whoever loves son or daughter more than me
is not worthy of me;
and whoever does not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after me is not worthy of me.
(Mt.10,37-38)
 
 
제1독서 탈출 1,8-14.22
복음 마태 10,34―11,1
 

제가 아는 분으로부터 얼마 전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랜만에 통화라 안부 인사를 나눴는데, 그렇게 건강하지 않다는 말씀과 함께 폐에 종양이 발견되어서 수술을 받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했기 때문에 종양만 제거하면 괜찮을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요즘 암 투병을 하시는 분들을 많이 뵙니다.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서 수술도 하시고, 또 항암치료를 하시기도 하지요. 만약 암세포를 그대로 놔두면 어떻게 될까요? 무한 증식을 하면서 다른 좋은 세포를 없애고 결국 생명을 잃게 만듭니다. 따라서 암세포가 잘려 나갔을 때 비로소 평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나는 싸우는 것이 싫다면서 암세포를 그냥 놔둔다면 평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비록 그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암세포를 잘라버리고 제거해야지면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뜻밖의 말씀을 하시지요. 평화의 주님이라는 분께서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라고 하시지요. ‘아니 왜 이렇게 폭력적인 말씀을 하시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앞서 암세포를 잘라버리고 제거하는 것이 평화인 것처럼, 세상의 악을 칼로 잘라 버리듯이 단호하게 거부해야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음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집안 식구도 원수가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를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에 있어서 언제나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우선순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우선순위를 빼앗는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물리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떤 만화작가가의 자신의 작품을 잡지사와 광고사에 보냈습니다. 그 모든 곳에 넘치는 의욕을 가지고 응모했지만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지요. 그 이유는 그림에 재능이 없고, 내용에 있어서도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도전했지요. 그가 바로 미키 마우스를 만든 월트 디즈니(Walt Disney)입니다.

주님의 일에 있어서도 이러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외면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또한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주님의 일을 하는데 주저한다면 주님의 평화를 얻을 수 없음은 물론 주님과 함께 하는 밝은 미래도 보장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을 행함에 있어서 용기 있게 나아가야 합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말이지요.

꿈을 지녀라. 그러면 어려운 현실을 이길 수 있다(릴케).


평화로운 우리집. 아버지 생신 맞이해서 외식을...

 

두 명의 탐험가

인터넷에서 보게 된 글이 생각납니다. 두 탐험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결과는 전혀 달랐음을 전해 줍니다.

우선 로버트 팰컨 스콧(Robert Falcon scott, 1868 ~ 1912)입니다. 1911년 12월에 남극에 도착했지만 그 뒤 9개월 동안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지요. 그러다가 1912년 11월에 그의 일기장과 시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의 일기장에는 이러한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신사처럼 죽을 것이며.. (중략).. 안타깝지만 더 이상 쓸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꿈이 사라졌다.’

스콧을 비롯한 7명의 대원 모두 사망했지요.

또 한 명의 탐험가는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Henry Shackleton, 1874 ~ 1922)입니다. 그 역시 1916년 8월에 남극에 도착했지만 조난을 당하고 말았지요. 하지만 그와 27명의 동료들은 절망하지 않고 모두 꿈을 간직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조난 당한지 1년 7개월 만에 모두 무사히 귀환을 하게 되지요. 섀클턴은 말합니다.

“나와 대원들은 남극 얼음 속에 2년이나 갇혀 살았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꿈을 버린 적이 없었다.”

꿈을 간직한다는 것은 이렇게 미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꿈을 간직하며 살고 계십니까? 용기를 내어 절망을 물리치고 꿈을 실현하시길 바랍니다.


남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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