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5-07-16 조회수1,219 추천수12 반대(0)

요즈음 농부들은 논이나 밭에 바로 씨앗을 뿌리지 않습니다. 벼는 모판에 잘 키워서 어느 정도 자란다음에 모심기를 합니다. 그냥 씨를 뿌려서는 많은 씨앗들이 펴보지도 못하고 죽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농부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서 그런 방법을 찾아냈을 것입니다. 따뜻한 온실 속에서 씨앗은 모판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바람도 불고, 비도 내리고, 때로 가뭄을 견디어내야 하는 논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수련장에 있을 때입니다. 가끔씩 양재동 꽃시장에서 꽃을 사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도 양재동 꽃시장에는 어리고 여린 꽃들이 작은 화분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꽃들을 사서 수련장의 길가에, 연못 주변에 심었습니다. 그냥 꽃씨만 뿌려서는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화분에서 옮겨진 꽃들은 이제 수련장을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오랜 시간 보호를 받아야만 비로소 한 인격체로서 홀로설 수 있습니다. 세상의 다른 동물들은 태어나면 곧 걷고, 먹고, 스스로 행동하게 됩니다. 부모의 도움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은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오랜 시간을 부모와 가족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언어를 배우고, 사회성을 배우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비록 더딘 성장의 과정이지만 그런 과정이 인류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세는 40년을 기다린 후에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모세에게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보여 주시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40년을 지냈습니다. 그 시간은 낭비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은 정화의 시간이었고, 그 시간은 단련의 시간이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40년은 어쩌면 아주 작은 시간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있어야만 왜 사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결혼한 부부들이 너무나 쉽게 헤어지고 있습니다. 서로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각대로 상대방이 움직여 주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모판에서 옮겨진 벼는 땅 속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부부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도 서로를 기다려주고, 배려해주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서로가 받아들이고, 사랑의 밭으로 뿌리를 내리면 바람이 불어도, 가뭄이 와도 부부는 용감하게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선배 신부님들이 늘 당부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가게 되면 반드시 6개월은 기다려 주라는 말씀입니다. 그곳의 본당 신자들도 전에 계시던 신부님과의 신앙생활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새로 오신 신부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옮겨진 나무는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반드시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잎이 떨어지기도 하고, 더 많은 물이 필요하기도 한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너무 조급하게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은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는데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열리면 몸이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았는데 몸이 변하기를 바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를 53년이나 기다려 주고 계십니다. 그러니 내 마음을 몰라주는 이웃들을 조금 더 기다려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운동선수가 사고가 나는 것은 자신의 체력만 믿고 충분히 몸을 풀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실 속에 있는 모판들이 생각납니다. 꽃시장에서 안전하게 자라는 예쁜 꽃들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의 말씀 속에서 자라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시련의 때가 와도, 그래야만 고난의 시간이 다가와도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믿으며 이겨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등대가 되어서 험한 세상의 파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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