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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종교지도자들이 하느님의 아들을 죽이기로 모의하다니!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07-18 조회수1,046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5718()/주일복음말씀묵상/ 종교지도자들이 하느님의 아들을 죽이기로 모의하다니!

(마태12,14-21)

 

 

12장은 과도기적인 장이다. 12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유대인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이 장은 경륜에 있어서 핵심적이다. 만일 우리가 12장에서 주님의 전환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말씀을 이해하는 데 미숙한 것이다. 12장 이전에 주님은 명백히 유대인을 위하셨고 은밀하게 이방인들을 위하셨다. 그러나 12장 이후부터는 분명히 이방인들을 위하시고 유대인들을 배척하고 계셨음을 암시하셨다.

 

12,14절은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고 말한다. 이것은 바라사이들이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였다. 그 이유는 앞 단락에서 주님께서 안식일을 깨뜨렸기 때문이다(12,9-13). 구약의 예표 안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옳지만, 안식일의 주인이며 실재이신 주님이 오심으로써 이제 예표의 역할은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바리사이들은 만일 안식일이 깨뜨려지면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택한 백성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세우신 언약의 표였다.

일단 이 표가 무너지면 언약은 무효가 되는 것이었다!

바리사이들은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의 태도, 곧 언약을 깨뜨려 이스라엘을 내어 버리시려는 것, 그 언약의 기초가 주님에 의해서 무너지게 생겼으므로 바리사이들은 종교적인 열성을 빙자하여 주님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로마의 정치적 권력과 헤롯당의 힘을 이용함으로써 정치와 야합하는 종교적 부패상을 대변해 주고 있다.

 

15절은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아시고 그곳에서 물러가셨다. 그런데도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시면서도라고 말한다.

주님은 그곳을 떠나가셨다. 그분은 도망가지 않으셨다. 루카복음 4,30절에는 주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셨다고 말한다. 그분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떠나가셨다.

이러한 고요함은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위엄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시면서도라는 말은 그분의 치유의 능력으로 그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을 연민과 긍휼로 돌보아 주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16절은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셨다.

주님의 명성과 또한 자신들의 호기심 때문에 주님께 나온 군중들은 반드시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 못된다.

군중들이 신적 기적을 보고 흥분하여 예수를 따르며 왕으로 모시려는 정치적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주님은 참 구주는 사랑의 봉사자이며, 왕위에 앉는 자가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섬기는 자라는 것을 먼저 백성들에게 가르쳐야만 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이 그분 자신을 알리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17-21절에서 마태는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자기를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을 때", ‘여호와의 종의 노래’(이사 42,1-4)에 나오는 예언이 예수에게서 성취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 인용문에서 특별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이방인들을 두 번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곧 이것은 특별히 어떻게 하느님께서 이방인들에게로 돌아서셨는가를 보여준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처단하려는 의도를 달성하는 즉시로 예수님은 전적으로 이방인들에게로 향할 것이다.

 

18절은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고 말한다(가톨릭성경).

18절은 원문에서 보라 나의 택한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라고 번역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성경에서 보라라는 말이 있을 때마다 그것은 사람들의 특별한 주의를 끌고자 하는 의도이다. 이사야 40장 이후에 언급된 은 특별히 주 예수님을 언급한다. 사도행전 8장에 기록된 것이 또한 이것의 증거이다.

 

택했다는 것은 의지의 문제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위치의 문제이며, “기뻐한다는 것은 감정의 문제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히브리어 본문의 이사 42,1절에는 이 구절이 언급되지 않는데, 아마도 마태는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로부터 들린 소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마태3,17)을 기억하고서 이 표현을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심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슈파트공의’, ‘심판의 두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70인역에서는 심판으로 번역되어 있다.

알게 하리라는 예수님께서 심판을 알게 하시되 과격하게, 급진적으로 하지 않으시고, 조용하게 점진적으로 하신다는 뜻이다.

 

19절은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들지 못하리라.”고 말한다. 주님은 얼마나 잠잠하셨는가!

19절은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외치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리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은 그분이 더 이상 공개적으로 사역하는 데 자유롭지 못했음을 가리킨다. 그 대신 주님은 자신을 감추셔야 했다. 주님이 배척을 당하시고 자신을 숨기셔야 했던 이유는 종교적인 규례와 의례와 의식들을 깨뜨렸을 뿐만 아니라, 온전히 하느님의 뜻에 따라 차질 없이 십자가의 사역을 수행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배척은 극도에 달했다.

사실 이러한 일들은 오늘날에도 동일하다!

우리가 종교적인 규례들과 의례들과 의식들을 주의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을 주의하면 할수록 더욱더 격렬한 반대와 핍박이 있을 것이다!

 

20절은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라고 말한다.

20절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은 그분이 배척받고 반대당하고 계셨지만 여전히 긍휼이 충만하셨음을 가리킨다. 그분을 반대하고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유대인들은 상한 갈대와 연기 나는 심지와 같다.

 

유대인들은 갈대로 피리를 만드는 습관이 있었다. 피리를 불다가 갈대가 상하여 피리를 불지 못할 때, 그들은 그것을 부러뜨리고 다른 갈대로 피리를 만들었다. 또한 그들은 종종 아마(亞麻)로 만든 끈을 쇠뿔 속에 넣고 심지로 사용하여, 그 속에 기름을 부어서 길을 갈 때 횃불로 사용하였다. 기름이 떨어져 심지가 연기를 내기 시작하면 그들은 그것을 꺼버렸다.

 

주님의 백성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피리 소리를 낼 수 없는 상한 갈대와 같고, 또 어떤 사람들은 환한 빛을 비출 수 없는 연기 나는 심지와 같다. 그러나 주님은 상한 자들을 꺾지 않을 것이고, 연기 나는 자들을 끄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환영받지 못하고 배척을 당하셨지만 여전히 긍휼이 있으시다!

오히려 그분은 그들 모두에게 긍휼과 은혜의 문을 열어 놓고 계실 것이다.

 

오늘날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과 믿는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상한 갈대가 되어 더 이상 피리 소리를 낼 수 없게 되었다. 상한 갈대들은 꺾어서 버려져야 마땅하지만, 그러나 그분은 긍휼이 있으시다! 그분은 긍휼의 왕이신 구주이시다!

당신은 오늘 그분을 배척할지 모르지만 그분은 여전히 당신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오늘 당신이 주 예수님 회개합니다.’하고 진실로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면, 그분은 당신을 사랑으로 대하실 것이다. 그분은 결코 상한 갈대를 꺾거나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실 것이다. 오히려 그분은 당신이 그분의 긍휼과 은총을 받기를 기다리실 것이다.

그분은 여전히 상한 갈대로부터 피리소리를 듣기를 기대하신다!

 

21절은 민족들은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고 말한다. 여기서 민족들은 이방인을 의미한다. 유대 종교인들에 의한 핍박으로 인하여 그분의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로 돌이켜졌다. 이제 이방인들은 그분의 이름에 그들의 소망을 두며, 그분을 믿고 그들의 구주로 그분을 영접한다. 이사야 선지자의 이사42,1-4절의 예언이 모두 성취된 것이다! 아멘.

 

상한 갈대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일은 성령께서 하시는 생명을 회복시켜 살리시는 생명의 일이다. 죄인이 심판을 받을 것을 깨닫는다면, 진실로 회개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축복을 얻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오늘날 소위 현대판 바리사이들의 음모’, 곧 그리스도와 신성한 생명이 아닌 교회 내에서 서식하고 있는 이단, 잘못된 교리, 의례와 의식, 인본주의와 인간적 신념 등이 그들의 종교적인 열정을 빙자하여 더욱 공공연히 각처에서 교묘히 진행되고 있다!

다만 명백한 것은 오시는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들의 행위는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것이며,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반드시 심판받게 될 것이다!(2코린5,10)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그분의 생명을 누리를 복된 주말이 되시길!

알렐루야! 아멘.

 

* 전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 을 참고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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