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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참된 예배란 무엇인가?(요한4,24)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07-22 조회수2,893 추천수0 반대(0) 신고

참된 예배란 무엇인가?(요한4,24)

 

 

참된 예배란 무엇인가?

우리는 예배에 대한 많은 오해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이는 미사 시간에 경건한 표정과 자세로 옛날 주님 믿기 전 제사 지내던 시절의 경건을 흉내내기도하고, 성체를 모실 때 절을 수없이 하는가 하면, 수녀님들은 대개 제대를 지날 때마다 90도 각도로 절을 하고, 어떤 수녀님은 뒤편 어린 아이 보호실에 갈 때 성체 그릇을 머리 위로 쳐들고 오가기도 하며, 성체를 받아먹으려고 줄을 설 때도 마치 부처상 앞의 불교신자 모양 몇 번이나 절을 깜박깜박하면서 서로 경쟁하듯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고, 심지어 어떤 신부님은 성체예식의 말씀까지도 거룩하고 경건하게 하려고 목소리를 희한하게 변성하면서까지 거룩을 흉내낸다.

 

마태26,26-29절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이제부터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으로 미루어 보아, 주님께서는 인간이 교리로 정한 화체설이니 대표설에 강조점을 두시지 않고 다만 영적 실재를 강조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먹고 마시는 배후에는 영적인 실재가 있다!

예수님은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하셨지, “이것이 내 몸을 대표한다”, 또는 "이것이 내 몸으로 변한다"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이것은 나의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신 후에 이제부터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고 하셨다. 분명히 이것은 포도나무가 화체된 것도 아니고, 또한 피를 대표하는 것도 아님을 지적해 준다.

 

바오로는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1코린10,16) 라고 했을 때, 빵은 빵이지만 그것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정한 것이다. 잔은 잔이지만 그것을 그리스도의 피로 받아들인 것이다. 바오로의 눈에는 대표니 화체니 하는 것은 아예 보이지 않고 다만 영적 실재만 보였다.

그는 더 나아가서 이렇게 설명했다.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10,17).

바오로가 영적 실재에 접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바오로 사도! 그는 진정으로 주님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빵을 들 때 진실로 주님의 몸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빵을 이미 잊었고 지금은 영적 실재를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잔을 들 때 실제로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포도를 잊고 영적 실재를 접하였기 때문이다. 영적 실재를 접한 이상 그에게는 단어나 교리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님은 다음 말씀에서 우리들에게 예배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려주셨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한4,24).

이 말씀은 너무나 귀하고 귀한 말씀이다!

지난날 말씀묵상 중에 이 말씀을 깨닫는 순간 모호하고 애매했던 많은 것들이 열리며 해석되기 시작하면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는 그리스어 원문에 따라 "하느님은 영이시니 경배(예배)하는 사람들은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경배해야 한다"라고 번역함이 보다 정확하다!

"하느님은 영이시니"에서 영은 주 영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본성 자체를 가리킨다. 영이신 하느님을 예배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그분과 동일한 본성을 지닌 우리의 영으로 예배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의 영에 대하여는 http://cafe.daum.net/yoondaniel 로마서 연구영적성장과 영적인 사람을 참조하실 것.)

 

"영 안에서" 의 영은 우리 사람의 영이다. 구약에서 하느님은 자신의 처소를 위해 선택하신 곳(12,5,11,13-14,18)에서 그리고 제물들로 경배를 받으셔야 했다(1-6). 그러나 오늘날 하느님께서 자신의 처소를 위해 선택하신 곳은 사람의 영이다(2,22).

또한 이 제물들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데,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예배할 때에 드린 모든 제물의 성취이시자 실재이시다.

 

그러므로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느님은 영이시니 사람의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경배하라고 가르쳤을 때에 주님은 그녀가 어떤 특정한 장소가 아닌 그녀의 영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 하느님을 접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신 것이었다!

무엇이 진리(진실)인가?

여기서 진리란 실재(reality), 진실()를 뜻한다. 여기서 강조점은 성령에 있다. 성령에 의하여 실재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의 영이 사람의 영 안에 계시는 성령을 접촉하는 것이며,

영이 하나님(성령)을 접하지 못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안에서 성령과 접촉하지 않는 것은 진실이 없다. 왜냐하면 영에 속한 것은 참이지만 영에 속하지 않은 것은 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관계되는 모든 것은 영안에 있다.

우리는 하느님께 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영에서 나온 것만이 실재요, 영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실재가 아니다!

예배는 감정이나 느낌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드려야 한다는 말이다!

진리의 영은 곧 실재의 영이다.

 

그러므로 영적 실재는 성령 안에 있게 마련이다.

오직 성령 안에 있는 것만 영적으로 참된 것이니, 이는 모든 영적인 것이 성령 안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일단 무엇이든지 성령 밖으로 나오게 되면, 죽은 의문과 형식으로 변하게 된다. 영적인 것들은 성령 안에 있을 때에 비로소 실제적이고,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생명으로 충만해 있다.

 

의문에 속한 예배는 그만 두고라도, 영적 예배라고 불리는 예배도 가끔 아멘의 화답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음을 체험한 적이 있는가?

왜 그런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하여간 이것이 실재는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반대로, 조배실 한 구석에서 혼자 간절하게 하느님을 예배하는 어느 자매에게서 아멘으로 화답한 경우를 당신은 체험한 적이 있는가? 왜냐하면 이런 경우에 우리는 진실, 곧 실재를 접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 있는 영적 실재를 접한 사람은 역시 영적 실재를 접한 다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즉시 그 마음속에서부터 아멘으로 화답하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마찬가지다.

시편42,7절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른다라고 한 말은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

실재가 실재를 접하며, 영적 실재를 접한 사람들은 서로를 안다는 말이다!

당신이 실재를 접한 후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아직 실재를 접하지 못했거나 실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당신은 즉각적으로 그 사실을 지각한다는 말이다!

 

당신은 그 사람이 아직 실재를 접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그가 아직도 지성과 율법, 규칙이나 교리나 자기 신념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 앞에서 성경이 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단지 실재를 말한다!

이런 진실성, 곧 실재와 관계하게 되면 사람은 교리, 의문, 인간적인 생각이나 방법에서 떠나게 된다. 그것이 세례이든, 떡을 떼는 일이든, 교회든 간에 항상 실재가 있다. 단순히 형식, 절차, 교리, 교회법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어느 때든, 어느 곳에서든 영안에서 살아계신 주님, 곧 실재(reality)를 만나는 것!

그것만이 참된 예배이며 영적인 모든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의식과 형식과 생명이 없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주는 영이신 살아 계신 그리스도이시다!(요한6,63)

이 실재를 접촉하는 것만이 영적인 것이며, 그 외 일체는 망상이다!

 

남을 속이는 것은 거짓말이고 자신을 속이는 것을 망상이라고 한다. 바오로도 한 때 망상에 빠져 있었다. 그는 교회를 핍박하면서 하느님을 열심히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다(필리3,6).

그러나 그는 스스로 옳다고 믿었다.

이것을 망상이라고 한다!

망상은 마음의 문제이며 파괴적이다. 망상에 빠진 사람들은 잘못된 일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옳다고 주장한다. 망상에 빠진 사람들은 잘못된 일을 해놓고도 자기가 한 일이 옳다고 생각하고 믿기 때문에 아무도 그에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해 줄 수가 없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들은 그 망상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진리라고 전파하는데 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는 실로 큰 문제이다!

하느님은 빛이시라”(1요한1,5).

매 순간 우리가 하느님의 빛 안에서 살아가고 실재를 알고 누릴 수 있도록,

! 주님이시여!

우리를 거짓과 망상에서 구해 주옵소서!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자비를 베풀어주옵소서!

알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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