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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7-23 조회수1,840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7월 23일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Gross is the heart of this people,
they will hardly hear with their ears,
they have closed their eyes,
lest they see with their eyes and hear with their ears
and understand with their hearts
and be converted and I heal them.
(Mt.13,15)
 
 
제1독서 탈출 19,1-2.9-11.16-20ㄴ
복음 마태 13,10-17

 

유명한 성화들을 보면, 천사를 날개 달린 성스러운 모습으로 그리고 악마는 뿔 달린 흉측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천사와 악마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까?

제가 신학생 때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무전여행이 한창 유행하던 때라 저 역시 약간의 차비와 비상금만 달랑 들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세상인심은 그리 녹녹치가 않더군요. 영화에서처럼 차를 공짜로 태워주지도, 고생한다면서 밥을 공짜로 주지도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피서 철이라 숙소는 모두 다 사람들로 가득 찼고, 민박집의 가격도 부르는 게 값이었습니다.

날도 어두워지고 숙소를 못 찾아 전전긍긍하다가 버스 대합실에서라도 잘 요량으로 자리를 찾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로 그 조차도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어찌할지를 모르는 제 모습을 보셨는지 어떤 한 아저씨가 “학생, 여행 나왔나봐. 그런데 잘 데가 없나보지? 여기서 고생 말고 우리 집이 그리 멀지 않으니 거기서 자고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순간 갈등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혹시 새우 잡이 배에 끌려가는 것 아냐?’라는 뜬금없는 상상이 저절로 들 정도로 이 분의 인상이 너무 좋지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제 생각을 눈치 채셨는지, “내가 뭐 이득 본다고 그럴까? 나도 학생 때 시절이 생각나서 그냥 재워 주려는 거야.”라고 편안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결국 이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또 맛있는 식사도 대접 받았습니다. 또 아저씨로부터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가 있었지요. 그리고 이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천사는 날개 달린 성스러운 모습만은 아닐 것이라고, 때로는 이 아저씨의 모습처럼 우락부락한 모습의 천사도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말이지요.

우리의 일상 안에는 너무나 많은 천사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도 그 천사가 있어서 다른 이웃들에게 천사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천사를 보고 계시며, 또 천사를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천사의 모습을 보여주며, 또한 천사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일상의 삶에서 천사와 가깝게 지내시는 주님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주님을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묻는 제자들을 향해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시지요.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느님의 선택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하신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갔지요. 주님을 받아들이려고 했고, 주님의 뜻을 따르려고 했기에 그들은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가고 싶은 하늘 나라입니다. 그 하늘 나라에 들어가려면 먼저 일상 삶 안에 계시는 주님을 발견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천사도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천사처럼 깨끗하고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갈 때, 하늘 나라는 그리 멀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는 위대하고 고귀한 임무를 완수하게 되기를 열망하지만, 내 주된 의무는 작은 임무라도 위대하고 고귀한 임무인 듯 완수해나가는 것이다(헬렌 켈러).


성당 안의 천사상.

 

아무거나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술 한 잔 기울이러 주점에 들어갔습니다. 친구에게 물었지요.

“안주는 무엇으로 할까?”

그러자 친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무거나.”

사실 저 역시도 ‘아무거나’라고 하면서 안주 선택을 상당히 어려워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식당을 가보니 메뉴판에 ‘아무거나’라는 안주가 있더군요. 주방장이 아무거나 담아서 가져오는 메뉴입니다.

‘아무거나’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친구와의 만남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이때 먹는 안주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삶의 중요한 순간에서 ‘아무거나’라는 말로써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려고 할 때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자신의 미래에 관해서 아무나 되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별 볼 일 없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아무나가 아닌,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는 누군가가 되고자 하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꿈을 잃어가면서 그냥 ‘아무나’ 되려고 합니다. 나는 뭘 해도 안 된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꿈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특별한 누군가로 만드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소중한 ‘나’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아무나’가 아닌, ‘특별한’ 나입니다.


아무거나 메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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