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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말씀묵상] 사제들의 이정표요 나침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5-08-04 조회수1,455 추천수1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제들의 이정표요 나침반


 

오늘 이 시대 사목자들이 누리는 축복이 한 가지 있습니다. 때로 사목자로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갈등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방황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아버지요 스승 역할을 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발길 닿는 곳마다 온몸으로 사목자로서의 표양을 보여주고 계시니 말입니다. 이제 남아있는 일은 그분을 보고 따라하는 일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못지않게 사목자들의 이정표요 나침반이 되어주신 또 다른 한분의 사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해소의 순교자’ ‘성체성사의 성인’ ‘본당 사제들의 주보성인’ 아르스의 성자 비안네 신부님이십니다.


 

사제로서 그분의 삶, 특히 본당 사목자로서 신자들을 대하는 마음, 무엇보다도 성사집행과 관련된 그분의 진지한 태도는 우리를 많이 부끄럽게 만듭니다. 비안네 신부님은 작은 본당인 아르스를 그토록 사랑했습니다. 아르스 주임 사제로 발령받은 신부님은 평생동안 거의 그곳을 떠나지 않고 죽기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만큼 그 본당과 본당 신자들을 사랑했다는 표시입니다.


 

특히 비안네 신부님은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정성껏 봉헌하는 성체성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루 온 종일, 식사 시간과 취침시간까지 줄여가며 좁디좁은 고백소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주었습니다.


 

비안네 신부님 성덕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특별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제로서 당연히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충실, 그것이 그분 성화의 비결이었습니다. 본당 사제로서 가장 중요한 성체성사를 지극정성으로 준비하고 경건하게 봉헌하는 것, 그리고 성체성사에 앞서 꼭 필요한 또 다른 성사 고백성사를 통해 신자들의 영혼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것, 그것을 충실히 행함으로 인해 성인이 되신 것입니다.


 

물론 가장 본질적인 사목을 위해 비안네 신부님은 부차적인 것들에 대한 과감한 가지치기를 단행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오직 영적인 것, 하느님, 영성생활, 신자들의 영신생활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아르스의 성자 비안네 신부는 전체 신자 수가 230명 정도 밖에 안 되는, 다 쓰러져가는 작은 시골 본당 주임 신부로 발령을 받게 되었는데, 주변 사람들은 비안네 신부가 뭔가 큰 잘못이라도 저질렀기에 문책성 인사를 당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비안네 신부는 230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 몸까지 떨었다고 합니다.


 

비안네 신부님의 사제성소 여정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측면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비안네 신부님은 사제로 서품되면서 ‘부끄럽게도’ 얼마 동안 고해성사 집전권이 유보되었습니다. 사제로 서품되었지만 사제로서 가장 일상적이고, 기본적이고, 중요한 성사인 고해성사를 집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교회 당국은 비안네 신부님이 아직도 고해성사를 집전할 자질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안네 신부님이었지만, 그는 후에 ‘고해소의 성인’이 됩니다. ‘고해소의 성인’ 비안네 신부님께서 한때 자격미달의 신학생으로 여러 번 중도에서 하차해야 했다는 것, 최종적으로 자질부족으로 판명되어 사죄권이 유보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참 묘하십니다.


 

비안네 신부님께서 깨닫고 실천한 평범하지만 소중한 진리를 다시 한번 기억해봅니다.


 

“고해성사는 성체성사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을 받을 때 집 안을 깨끗이 치우고 장식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참으로 주님을 모시기 위해 자신을 장식하고 영혼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성체성사를 잘 받으려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성체성사보다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진실한 영성체를 방해하는 것들을 내버리십시오. 그것은 거대한 산 앞에 놓은 한 줌의 먼지와 같습니다. 거룩한 영성체는 사랑의 욕조입니다. 성체를 모실 때 우리는 특별함을 느끼며 온몸 구석구석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 편안함은 무엇입니까? 우리 몸의 각 부분과 하나 되며 설레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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