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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8-12 조회수1,611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8월 12일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For where two or three are gathered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in the midst of them.
(Mt.18,20)
 
 
 
제1독서 신명 34,1-12
복음 마태 18,15-20
 

언젠가 운전을 해서 어디를 가고 있는데 길이 너무 많이 막히는 것입니다. 사실 그곳의 도로는 무척 넓은 곳이어서 차량의 통행이 늘 원활했었거든요. 하지만 이날은 천천히 가는 것도 아니라, 그냥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예 도로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려서 전방을 살펴봅니다. 저 역시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차에서 내렸습니다. 앞에 까지 다녀온 분이 꽤 큰 사고가 났다는 말을 전해주더군요. 그러자 사람들이 웅성대며 말합니다.

“왜 갑자기 사고가 난 거야? 바쁜데... 빨리 가야 하는데...”

자신들이 가지 못하고 있음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이 순간 저는 조금 서늘해짐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사고가 났다고 하는데, 이 사고로 인해 다친 사람이 없냐면서 안부를 묻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늦게 가게 됨에 대해서만 투덜거리며 이야기하는데 이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사고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이 다친 나에 대해서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보십시오. 나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남들에게는 엄격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까요?

‘세상에는 남의 일이 없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 글을 보는 순간, 가슴을 꽝 때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나의 일처럼 생각하고, 그 일이 또 언젠가는 나의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임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사람 자체에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람을 사랑을 받아들이며 사는 사람만이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도 이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해주십니다. 옳지 못한 길로 가는 사람을 보면서, ‘내가 뭐라고 이야기를 해.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식으로 그대로 놓아두는 것은 사랑에서 우러난 대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곧 첫 번째는 혼자서, 두 번째는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그 다음에는 훨씬 많은 사람을 데리고 가서 타이르라고 이르십니다.

이는 이 사람이 수치심을 느껴서 자신의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엇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라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내 삶의 방향을 사람 자체에 두는 것이며, 사람을 사람답게 받아들이는 사랑의 삶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들의 일치와 화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십니다. 그 일치와 화합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누구 할 것 없이 자신만의 짐을 지니고 살아가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톨스토이).


도대체 성모상 같지 않아서 종교전쟁 때 파괴되지 않을 수 있었던 성모상.

 

세 명의 도적

탈무드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도적 세 명이 부잣집을 털었습니다. 그 집에 얼마나 금과 현금이 많은지 각각 큰 자루에 한 자루씩 짊어지고 자신들의 은신처로 와 보니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이제 그것을 똑같이 나누기로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한 명이 제안을 하지요.

“우리 기분도 좋으니까 술 한 잔 기분 좋게 마시고 나누자.”

가장 나이 어린 도적이 술을 사러 내려간 사이, 두 명이 앉아서 이런 모의를 합니다.

“저 놈이 없어지면 우리는 더 많은 재물을 가질 수 있어.”

그래서 둘은 술을 사러 간 도적을 죽일 모의를 합니다. 그런데 술을 사러 간 도적 역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둘만 없어지면 내가 모든 것을 가질 수가 있잖아. 술에 독약을 타서 모두 죽이자.”

술을 사러 간 도적이 도착하자마자 둘은 살해합니다. 그리고 사가지고 온 술을 마시고 모두 다 죽고 말았답니다.

욕심은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판단이 혹시 나의 욕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래된 라디오들. 쓸모없는 것들도 이렇게 모아놓으니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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