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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8-14 조회수1,160 추천수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8월 13일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Lord, if my brother sins against me,
how often must I forgive him?
As many as seven times?"
Jesus answered,

"I say to you, not seven times

but seventy-seven times.

(Mt.18,21-22)

 

 
제1독서 여호수아 3,7-10ㄱㄴㄹ.11.13-17
복음 마태 18,21─19,1
 

“과거 경험의 일부 또는 전부를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은 정서적, 신체적 요인, 혹은 양자의 결합요인으로 발생한다. 퇴행성 기억상실증은 특정 시간 이전에 일어난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이며, 반퇴행성 기억상실증은 특정 시간 이후에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기억 무능력 증세로 보통 기억상실이 시작된 이후를 말한다.”(사회복지학사전, 2009.8.15, Blue Fish)

기억상실증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기억상실증은 영화나 드라마, 또는 소설 속에서도 종종 나옵니다. 솔직히 저는 이렇게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 물어도 그런 경험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런데도 영화나 드라마, 소설의 소재로 자주 이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억을 잃음으로 인해 상황이 180도 반전이 되는 극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 기억상실증이 가상의 현실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삶 안에서도 기억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솔직히 누군가 내게 베푼 도움이나 감사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자주 잊어버립니다. 신경 써서 기억하려 하지 않으면 잘 기억나지 않지요. 그에 반해서 내가 누군가에게 베푼 것들은 너무나도 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보니 ‘나는 이렇게 베풀었는데, 상대방은 왜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거야?’라는 식의 생각 등으로 미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사람이 잘 안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기도 하지요.

무엇보다도 잘 잊어버리는 것은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의 내가 있게끔 이끌어주신 주님의 사랑. 그러나 주님을 배제하고 나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했다는 착각 속에 빠지는 것은 주님 사랑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요? 더군다나 그렇게 많은 죄를 범하면서도 계속해서 기회를 주시는 주님의 용서는 왜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절대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식의 말을 서슴지 않고 할까요?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대답하시지요. 이 말씀은 끊임없이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기회를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사랑으로서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더 이상 기억상실증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특히 주님의 사랑을 잊어버린다면, 내 마음 속에서는 미움과 질투 등의 부정적인 생각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할 때에만 사랑과 감사, 용서 등의 긍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채워질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욕심을 채울 때가 아니라 비울 때 열린다(에피쿠로스).


땅 위에서 보는 하늘과 하늘 위에서 보는 하늘은 다릅니다.

 

용서 프로세스

어떤 책을 읽고서 메모를 해놓았던 것인데, 용서가 필요한 순간에 해 보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메모를 그대로 이곳에 옮겨 봅니다. 용서가 필요하신 분은 한 번 해보세요.

1.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장소에 앉는다.

2. 눈을 감고 당신이 분노와 미움, 원한을 느끼는 상대방을 떠올린다.

3. 숨을 몇 번 깊게 쉬고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 그냥 그 감정을 느끼는 데만 주목한다.

4. 당신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의 행동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것은 지나간 과거의 일이고, 지금은 그것을 바꿀 방법이 전혀 없다. 어떤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5. 그 사람이 결코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들은 그대로다. 숨을 몇 번 깊게 쉬면서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

6. 이제 그들이 고통과 부족과 상처 때문에 지금의 그 모습을 하고 있다는(그리고 과거에 어떤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들 스스로는 깨닫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상처가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그들의 고통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들이 자기 자신의 고통 때문에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고 발길질하는 어린아이라고 상상해 본다. 그들에게 연민이 느껴지는가?

7. 1~2분간 조용히 앉아서 연민(얼마만큼이든 좋다)이 심장을 확대시키는 기분을 느낀다.


네덜란드의 풍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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