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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성체 성혈 없이 살 수 없어야 하느님의 자녀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8-15 조회수1,298 추천수1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연중 제20주일


<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


복음: 요한 6,51-58







십자가에 못박히는 예수


안젤리코 작, (1450), 프레스코, 169x134 cm, 피렌체 성마르코 박물관


< 성체 성혈 없이 살 수 없어야 하느님의 자녀>

 

내가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누군가가 바나나를 무척 좋아합니다. 돈을 줘도 싫다, 회를 쓸어 주어도 바나나를 집습니다. 그러면 그 누군가는 원숭이나 그 수준의 사람인 것입니다. 만약 어떤 이가 권력을 쥐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을 서슴없이 저질렀다면 수준 낮은 사람이 확실합니다. 사람은 사람다워야 하는데, 그 의미는 사람은 사람이 좋아해야 할 것을 바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고아로 자라나 자수성가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소원하던 스포츠카를 구입했습니다. 하루는 자신의 아들이 스포츠카를 뾰족한 것으로 긁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너무 화가 나서 그 아이의 손을 집히는 공구로 내려쳤습니다. 아이는 손을 쓸 수 없게 되었고 아버지는 그 아들이 차에 써 놓은 것을 보고 자살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 아들이 차에 써 놓은 것은 아빠, 사랑해요!”였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자녀보다 돈을 더 좋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돈을 더 좋아하고 있었다면 아버지의 자격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곧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속해 있는 그 곳이 자신이 머무는 그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사람으로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만이 그분의 영원한 삶을 함께 누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자녀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일까요? 하늘의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인도의 유아 사망률은 세계 최고라고 합니다. 보통 아기 천 명당 오십 명이 사망합니다. 주된 사망 원인은 열악한 신행아 보호와 영양실조, 폐렴 등이라고 합니다. 물론 열악한 사회적 환경의 이유도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지 않는 것에 있다고 말합니다. 인도 사람들은 모유, 특별히 초유에는 몸에 안 좋은 성분이 들어있다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은 아무래도 분유 회사에서 그렇게 홍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모유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모유 수유를 하는 정도는 30-40%라고 합니다. 초유에는 지방 함유량이 낮은 반면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풍부하고 아기의 건강을 지키는 많은 항체가 들어있습니다. 또한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아기 음식으로는 그만입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생후 6개월까지 모유만 먹일 것을 강조합니다. 그랬더니 아동 사망률이 15%나 감소했다고 합니다. 인도는 워낙 인구가 많은 나라라 15%란 숫자는 일 년에 모유만 먹여도 수백만 명의 생명이 생명을 건질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유럽에서 전쟁 직후 고아가 된 아기들을 최고 시설의 병원에서 가장 좋은 음식과 치료를 통해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이상행동을 보이고 또 많은 아기들이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였습니다. 나중에 간호사들보고 아기들에게 우유를 먹이기 전에 한 번씩만 안아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망률이 현저하게 줄었다고 합니다.

쌍둥이로 태어난 한 아기가 인큐베이터에서 죽어갈 때 다른 쌍둥이 자매를 넣어주니 그 건강한 아기가 죽어가는 동생의 어깨를 손으로 감쌌고 그랬더니 죽어가던 아기가 살아났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 사랑이 안아주는 것이든 모유든 무엇이든 간에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으로 표현 된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모든 것이 다 주어졌어도 사랑을 받지 못하면 인간답게 살 수 없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사랑을 부족하게 받았기 때문에 모든 성격장애와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표현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 본성상 상대에게 자신을 알립니다. 대화가 없으면 상대 안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알 수 없듯이 사랑도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표현되어야만 합니다.

어떤 직장에 다니던 한 분이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나이가 많아서 좀처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수도회에서 입회해도 좋다는 통지가 왔습니다. 그 통지를 회사에서 받았는데 그분은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가 감사기도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문을 걸어 잠그고 기도를 드리려고 했는데 생각이 나지 않아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우리에게 강복하소서.”

입에 익숙한 기도가 그것이라 그렇게 기도했지만 감사의 정이 흘러넘치는데 어떻게 침묵하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감정이 그러하듯이 사랑 또한 인지할 수 있는 형태로 드러나지 않으면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짝사랑하던 아이에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까지 후회가 됩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 미인은 차지하는 이유는 사랑한다고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표현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할 줄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우리가 오관으로 인지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 된 것을 성사라고 부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이신 하느님의 영이 빵과 포도주의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졌다면 그것이 성사인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 오는 사랑의 성사가 필요하듯이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성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사는 반드시 우리가 사랑이라 느낄 수 있도록 표현된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느낄 수 있도록 빵과 포도주의 형태로 당신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의 사랑의 표현을 찾아내야만 하는 것처럼 인간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유일한 것을 찾으라면 당연히 성체와 성혈을 찾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표현은 모두가 희생입니다. 젖을 물려주는 것까지도 내 자신을 내어주는 행위이고 그 행위를 통해 어머니의 생명이 아기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생명입니다. 하느님은 그 생명을 당신 아드님의 살과 피로써 우리에게 전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면 아드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한 초등학생 아이가 어머니에게 감사편지를 쓰라고 했더니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엄마,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 좋은 집 사서 나가드릴게요.”

과연 이것이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말일까요?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을 끊임없이 청해야합니다. 그 사랑이 부모에게 희생일 수는 있지만 또한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는 것이기에 부모에게 기쁨을 줍니다. 우리가 성체가 하느님의 생명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끊임없이 청한다면 그분은 또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다른 모든 것을 다 잃더라도 성체만 청할 수 있다면 하느님의 자녀임을 확신해도 좋을 것입니다. 하늘의 양식, 하늘로부터 오는 사랑의 표현, 하늘로부터 오는 모유, 성체와 성혈을 좋아한다면 그 사람의 정체성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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