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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8-17 조회수1,256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8월 17일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If you wish to be perfect, go,
sell what you have and give to the poor,
and you will have treasure in heaven.
Then come, follow me.
(Mt.19,21)
 
 
제1독서 판관 2,11-19
복음 마태 19,16-22
 

약속 시간에 늦은 친구에게 “오늘 이렇게 늦으면 어떻게?”라고 말했습니다. 잘못한 것일까요? 자주 실수를 범하는 후배에게 “또 실수한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이 경우는 또 어떨까요?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 동생에게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니?”라고 화냈습니다. 역시 틀린 말이 아니지요?

분명히 잘못된 말도, 하지 못할 말도, 또 틀린 말도 아닙니다. 법적으로 큰 잘못을 했다고 벌 받을 일도 분명히 아니지요. 그러나 약속 시간 늦은 친구에게 “오느라고 힘들었겠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실수를 한 후배에게는 “그럴 수도 있지 뭐. 힘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떨까요? 전화를 받지 않은 동생에게는 “지금이라도 연락이 되어서 다행이구나. 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라고 말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충분히 화를 내고 질책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했을 때, 둘의 관계는 180도 바뀌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상식을 내세우면서 당연히 화도 낼 수 있고, 질책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또 때로는 이것이 정의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사랑을 실천하기를 늘 힘주어 강조하셨고, 당신의 십자가를 통해 사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부자청년의 이야기를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 부자청년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모범 청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율법의 모든 내용에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율법의 준수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가 착각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초대 교부인 오폴리나리스는 ‘율법은 훌륭한 삶으로 가는 길의 시작이지 완성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의 준수만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에게 율법의 준수 이상의 것을 제시하십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 말에 부자청년은 슬퍼하며 떠납니다. 분명히 좋은 뜻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그의 약한 의지로는 율법 이상을 요구하는 주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준만을 내세우면 ‘이 정도면 되었어.’라는 안일한 마음을 품게 될 때가 종종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 정도’를 뛰어넘는 더 큰 뜻을 우리들에게 요구하고 계심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의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 아닌, 다른 이의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사랑. 그래야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참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운이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뒤에 가서 하는 말이다. 행복한 자는 막대기를 심어도 레몬나무로 자란다(키케로).


독일 케벨라 성지의 종탑.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를 낼까요?

 

기억

자전거와 수영은 한 번 배우면 평생을 기억한다고 하지요. 하긴 정말로 오랫동안 수영을 하지 않아서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도, 물 위에도 뜨고 또 앞으로도 잘 가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연 자전거와 수영만 그럴까?’라고요.

사람을 많이 잊어버린다고 말하지요. 자전거보다 사람을 더 많이 만나는데 왜 잊어버릴까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리려고 스스로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랑을 잊어버린다고 말합니다. 이 역시 사랑을 잊어버리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요.

자전거나 수영을 평생 기억하는 것처럼, 사람도 또 사랑도 평생 잊지 않는 것이 되었으면 합니다.


독일의 자전거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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